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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오어사, 원효가 다녀간 그 길 위에 서다

by Yeongsik_Im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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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가 다녀간 그 길 위에 서다, 포항 운제산 오어사 吾魚寺

포항 운제산 오어사는 부처님의 그윽한 향기가 머물고 용이 감싸고 있는듯한 호수와 기암절벽이 한폭의 동양화처럼 어우려져 있는 곳으로 신라 4대 조사를 배출한 곳이다.

 

오어사(吾魚寺)는 신라 26대 진평왕 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된 사찰로 당초에는 항사사라 불렀으나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이 곳에서 수도할 때 법력으로 개천의 죽은고기를 생환토록 시합을 하였는데 그 중 한 마리는 살지 못하고 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헤엄치자, 그 고기로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하여 「나“吾”, 고기“漁”」자를 써서 오어사라 하였다고 한다.

오어사

오어사에도 찾아온 화창한 봄날 오어사 한쪽 빨래줄에는 봄볕에 승복이 잘 마르고 있는 듯 하다.

오어사 대웅전 영조 17년(1741)에 중건된 것으로, 정면 3칸 옆면 2칸에 다포형식의 팔작지붕이다.

 

오어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98호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of Oeosa

Gyeongsangbuk-do Tangible Cultural Property No.498

포항 오어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Wooden Seated Sakyamuni Buddha Triad of Oeosa

오어사 목조석가여래 삼불좌상은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불과 아미타불이 협시하고 있는 석가삼존불상이다. 주존인 석가불은、항마촉지인을 지었으며 좌우 협시불은 각각 시무외인을 지어 전체적으로 엄격한 좌우대칭을 이루고 있다. 석가불의 대좌 상면에 묵서된 조성기에 의하면,이 불상은 1765년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시주자와 더불어 당시 오어사의 대중 스님들을 열거하고 있으며,불상을 조성한 금어스님으로 수조각승 상정을 비롯하여 5인의 조각승을 기록하고 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알려진 상정의 최후 작품으로서 안정적인 비례와 입체감 등이 잘 표현된 수작으로 평가된다.

가학루

오어사 유물전시관

오어사 유물전시관에는 주요 유물로는 원효대사 삿갓과 범종, 오어사사적 등이 있다. 범종각 안쪽에 있어 지나치기 쉬우니 반드시 관람해보기를 권한다.

원효대사의 삿갓 종이와 실로 연결해서 만든 것인데 안에 솜을 넣고 겉에는 풀뿌리로 엮어서 만든 지혜가 엿보인다..
오어사 범종 보물 제1280호

오어사 동종 吾魚寺 銅鐘 보물 제1280호

Bronze Bell of Oeosa Temple Treasure No. 1280

초항 오어사 동종은 신라 범종의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고,명문에는 고려 고종(高宗) 3년(1216년)이라는 조성연대와 종을 만든 책임자인 대구 동화사 순성대사 및 주조 기술자인 대장 순광의 이름까지 남아 있다. 종의 표면에는 보살모양의 천의 자락을 휘날리는 비천상을 비롯하여 섬세한 문양이 뛰어난 조형미를 자랑하는 고려 동종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1995년 시월에 절 앞 저수지 공사 도중 발견 되었는데 보존상태가 양호하며 출토된 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보존처리과정을 거쳐서 1997년 7월에 오어사로 돌아왔다.

This bronze bell, which inherits the tradition of the Buddhist temple bell of Silla, was cast in 1216, the 3rd year of Goryeo King Gojong. Sunseongdaesa, at Donghwasa Temple in Daegu, was in charge ot casting the bell, and the responsible caster of the bell was Sun Gwang; their names and the year ot

construction are carved on the surface of the bell. Delicate patternscan also be found on the bell, such as flying celestial maidens, shaped like the Bodhisattva, emphasizing the beauty ot the sculpture. This bell is regarded as one of the greatest bells cast in bronze in the Goryeo period. In November 1995, it was discovered during the construction of a reservoir in front of Oeosa Temple. Since it had been preserved in good condition, it came back to Oeosa Temple in July 1997, after a preservation process was conducted by Gyeongju National Research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오어사 삼성각
오어사 산령각
오어사 응진전
범종각
범종각
오어사 범종
해수관음

원효대사(617 년 〜 686년)

원효(元燒)대사는 신라시대의 고승으로,속성은 설씨,법명은 원효,법호는 화쟁(和靜),초명은 서당 (警幅)이다. 신라 진평왕 39년 압량군 불지촌(현재 경북 경산시)에서 태어났으며 설총의 아버지이다.

젊은 시절 의상과 함께 당나라에 가서 수학하고자 요동까지 갔지만,고구려군에게 첩자로 몰려 갇혀 있다가 겨우 풀려나 신라로 되돌아왔다. 십년 후 두 번째로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가기 위해 백제국 항구로 가던 도중 하릇밤을 지내게 된 토굴에서 갈증이 나 토굴속에 고여 있는 물을 마셨는데 물맛이 매우 달고 시원하였다. 그러나 아침에 깨어보니 토굴이 아니고 오래된 공동묘지였고 물을 마셨던 그릇은 바로 해골이었다. 이를 계기로 대오(大情)한 원효대사는 발길을 되돌려 신라로 돌아왔다.

대오한 후 원효대사는 미친 사람이나 거지 행세를 하면서 거리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민중 포교에 들어갔다. 이후 요석공주와 인연을 맺어 설총(薛聽)을 낳았고 그 후 파계 (破戒)하였다. 파계한 후 속복(俗服)으로 갈아입고 스스로 소성 거사(小性居士) 라 하면서 천촌만락(千村萬落)을 돌아다 노래하고 춤추며 교화하였다. 이로 인하여 가난한 사람,어린아이들까지도 모두 부처님의 알고 염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원효대사가 교화한 사상으로는 인간의 원래 본성인 일심으로 돌아가자는 일심사상

모두가 실제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하나로 만난다는 화쟁사상(和靜思想),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무애사상(無碑思想)이 대표적이다.

말년에는 왕궁에서 <금강삼매경 (金剛三味經) >을 강의하였고 <십문화쟁론(十門和爭論)>을 찬술하였으며, 분황사(芽皇寺)에서 <화엄경 (華嚴經)〉,(사십회향품소(四+通向品疏)〉를 지었다. 원효대사는 신문왕 6년 70세의 나이로 혈사(穴寺)에서 입적하였다. 입적 후 아들 설총이 원효대사의 유해로 소상(聖像)을 조성하여 분황사에 봉안하였다. 원효대사의 대표적 이야기로는 무덤 속 대오설화(해골물 설화),척반구중설화,화엄신장옹호설화 등이 있다.

오어사 뒷편 기암절벽 위에는 자장암이 자리 잡고 있다.

 

 

 

그대 정말 오어사에 와보셨나요

그대 오어사에 와보셨나요​ 적바람에 잊고 있었던 혜공이 원효를 만나던 날 오어사 동종이 바람에 뎅뎅 혼자 울고 있었습니다. ​ 기운 빠진 여름이 풍경에 매달려 소리 공양을 올리고 제비집

hyanggyo.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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