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견 헌트는 북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생전의 모습을 본 떠 만든 충견 헌트의 청동조각상은 죽어서도 북쪽을 경계한다는 의미로 정면이 아닌 북쪽을 향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10년전인 2011년 여름에 다녀왔던 제4땅굴 앞에 세워져 있는 충견 헌트소위의 묘와 동상을 소개한다.
강원도 산악지역에는 남침용 땅굴이 만들어 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1990년 3월 3일 강원도 양구군의 동북쪽 26km 지점의 비무장지대안에서 남침용땅굴이 발견되었다. 이른바 제4땅굴이다.
이 제4땅굴을 발견하고 수색작전중 분대원을 구하고 산화한 화제의 군견이 있었으니 이 군견이 바로 육군 제21사단의 탐지견 헌트이다.
충견헌트의 생존당시 모습
분대원을 구한 명견인 헌트의 생전당시의 모습을 찾아보았다. 상기 두사진에서 헌트가 산화하기 직전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독일산 세퍼드종인 헌트는 당시 나이 4세였다.
죽어서도 북쪽을 응시하고 있는 헌트는 어떤 무공을 세웠을까?
198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최초 발견된 제4땅굴을 역갱도작업으로 관통된 이듬해 3월 3일 땅굴 수색 및 소탕작전이 시작됐고 이때 수색팀과 함께 탐사견으로 헌트가 투입됐다.
제1땅굴 발견당시에는 3명이 전사하고 5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제2땅굴 발견후 수색작전중에도 당시 김호영중사외 7명이 적의 지뢰와 부비트랩에 산화하기도 했기에 땅굴 수색작전은 매우 위험한 작전이었다.
적의 유독가스와 지뢰매설이 예상되는 암흑같은 갱도내에서 수색작전중 군사분계선 330미터를 남겨 둔 지점에서 헌트는 화약냄새를 맡고 위치를 알려주기위해 뛰어가다가 북한군이 설치해 놓은 수중 목함지뢰를 밟고 당일 12시 05분에 산화하게 된다.헌트의 희생으로 수색작전중인 1개 분대원들의 생명을 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분대원의 목슴을 대신하여 산화한 헌트는 군에서 인헌무공훈장을 수여받고 군견으로서는 최초로 장교계급인 소위로 추서됐다.
죽음으로서 장병들을 구하고 영광된 조국을 지킨 군견을 군에서는 충견이라 칭하고 헌트의 묘와 동상을 제4땅굴 바로 앞 좌측에 세워 제4땅굴을 찾는 모든 이들이 충견 헌트를 기억하고 추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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