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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 일번지 강진 영랑생가

Yeongsik_Im 2025. 1. 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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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여행 1번지 강진을 경유하며 이른 아침 영랑과 다산의 예던 길을 돌아 보았다. 예던 길은 '가던 길'의 옛말이다. 영랑의 시향과 다산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영랑과 다산의 예던 길에는 영랑생가, 시문학파기념관, 금서당, 충혼탑, 몽마르뜨언덕, 김충식고택, 사의재 등이 있는데 사의재에 이어 영랑생가를 소개한다.

영랑의 시혼이 살아 숨쉬는 영랑생가

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211-1에 위챃고 있는 영랑생가는 국가지정문화재료(중요민속자료 제252호)로 우리나라의 대표 서정시인이자 항일 민족지사였던 영랑 김윤식 선생(1903~1950)의 생가이다.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원형 그대로 보존관리해오고 있으며,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등이 그대로 남아있다. 영랑생가 바로 앞에는 2012년 3월 5일 개관한 시문학파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영랑생가
영랑생가 문간채

영랑 김윤식 선생은 이곳에서 1903년 1월 16일 부친 김종호와 모친 김경무 사이에 2남2년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에는 채준으로 불렀으나 윤식으로 개명하였으며 영랑은 아호인데 문단활동시에는 주로 이 아호를 사용했다. 1915년 3월 강진보통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이듬해 상경하여 기독청년회관에서 영어를 수학한 후 휘문의숙에 진학하였다.

영랑 김윤식 선생(1903~1950)은 남도의 사투리를 음악성있는 시어로 표현한 서정시인이자 단 한줄도 친일문장을 쓰지 않은 민족시인으로 1950년 9월 29일 작고하기까지 주옥같은 시 80여편을 발표하였는데 1930년 3월 창간한 ‘시문학’지를 중심으로 박용철, 정지용 등과 더불어 현대시의 새 지평을 열었다.

선생은 생애 87편의 시를 남겼으며 그중 60여편이 일제강점기에 창씨개명 등을 거부하고 이곳 영랑생가에서 쓴 것이다.

영랑생가 안채

영랑생가는 1948년 영랑이 서울로 이거한 후 몇 차례 전매 되었으나 1985년 강진군에서 매입하여 관리해 오고 있는데 안채는 일부 변형 되었던 것을 1992년에 원형으로 보수하였고, 문간채는 철거 되었던 것을 영랑 가족들의 고증을 얻어 1993년에 복원하였다. 생가에는 시의 소재가 되었던 샘, 동백나무, 장독대, 감나무 등이 남아 있으며 모란이 많이 심어져 있다.

한국현대문학 표징
영랑생거 돌담길을 따라 100미터 정도 올라가면 금서당이 있다.
영랑생가 바로 앞에는 2012년 3월 5일 개관한 시문학파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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