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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전라북도

[한국의 향교 전라북도] 고창 흥덕향교 흥덕 당간지주

by Yeongsik_Im 2021.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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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고창군 향역에는 고창향교와 무장향교, 흥덕향교가 있다. 먼저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교운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향교인 흥덕향교(興德鄕校)를 소개한다. 흥덕향교 대성전은 1985년 8월 14일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08호로 지정되었다.

흥덕향교는 조선 태종 때인 1406년에 흥덕현(현 흥덕면) 남쪽으로 400m 정도 떨어진 목화정(木花亭) 부근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왜구의 침입으로 불에 타 없어져 광해군 때인 1621년 현 위치로 이전 다시 지어졌다. 구전에 의하면 명륜당 자리는 원래 갈산사 자리였는데 갈산사가 폐치되자 향교를 세웠다고 전한다. 그 뒤로 숙종 때인 1675년 등 수차례 고쳐지어졌다.

1775년(영조 51) 현감 조신협(曺信協)이 유림과 협력하여 사마재(司馬齋)와 양사재(養士齋)를 창건하였으며, 1850년(철종 1) 중수하였다. 1838년(헌종 4), 1853년(철종 4), 1867년(고종 4), 1872년, 1885년에 중수하고, 1922년, 1926년, 1927년, 1939년에 보수하였으며, 1947년, 1949년, 1951년, 1955년, 1958년에 중수하였다. 명륜당과 대성전은 1977년에 단청을 새로 하였다. 향토문화전자대전

흥덕향교 외삼문

흥덕향교 외삼문을 들어서면 명륜당이 나오는데 뒤쪽이다. 흥덕향교 역시 앞쪽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 뒤쪽에는 제향인 대성전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인 배치양식을 따랐다. 그러나 명륜당의 정면이 대성전과 마주보고 있다.

흥덕향교 명륜당
흥덕향교 동재와 서재 유생들이 기숙하던 곳이다.
대성전을 둘러보기 위해 내삼문으로 오르는 계단 양옆에는 묘성비와 중수비가 세워져 있다.
흥덕향교 대성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08호인 대성전은 공자를 중심으로 안자 등 중국의 사성과 주희 등 중국 송대의 4현, 그리고 설총 등 우리나라의 유학자 18현 등 유학의 진흥에 공이 큰 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흥덕향교 곳곳에는 배롱나무가 많이 심어져 있는데 일주일쯤 전에는 배롱나무꽃이 아름답게 만발했을 듯 하다.

헌관실
행단 유래석과 비석군

흥덕향교 앞 은행나무는 공자가 은행나무(살구나무라로도함) 아래에서 강학을 한 데서 유래한 나무로 이후 공자와 여러 유현의 가르침을 상징하는 곳을 '행단'이라고 한다. 비석들은 흥덕현 일대에 산재해 있는 것을 이곳으로 모아놓았다고 한다.


흥덕당간지주 (興德幢竿支柱)

흥덕당간지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36호

흥덕향교 200여미터 앞쪽에는 당간지주가 있는데 ‘당간지주’란 당(사찰 입구에 설치하여 행사나 의식을 알리는 깃발)을 매다는 기다란 장대인 '당간’을 지탱하는 두 돌기둥을 말한다.

‘흥덕 당간지주’는 고려 초의 사찰인 갈공사의 당간지주이다. 기단부와 당간 받침은 모두 부서지고, 모서리 끝을 둥글게 처리한 네모난 좌우 대칭의 기둥 두 개만 남아 있다. 기둥 안쪽 상단에는 당간을 고정하는 구멍이 있고, 바깥쪽은 한 면에 3구씩 새긴 연꽃 무늬가 있는데. 이는 다른 당간지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매우 희귀한 것이다. 1987년에 훼손한 것을 복원하였는데, 오른쪽 기둥은 가로세로로 잘려 나간 흔적이 뚜렷하다.고려 시대에는 국교(國敎)라고 할 정도로 불교가 발전했지만, 조선은 유학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아 불교를 배척하였다. 흥덕의 갈공사(갈산사를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닌가 판단되어 확인중)도 그런 이유로 폐사시키고, 절이 있던 자리에 흥덕향교를세운 것으로 보인다. 흥덕당간지주 안내문

흥덕당간지주의 바깥쪽은 한 면에 3구씩 새긴 연꽃 무늬가 있는데. 이는 다른 당간지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매우 희귀한 것이다.
흥덕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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