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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경북경남

조선시대의 관아 장기 근민당과 척화비

by Yeongsik_Im 2021.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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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읍성과 장기향교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장기면사무소 내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아 건물이었던 근민당과 홍선대원군이 쇄국의 결의를 굳히고 온 국민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전국의 요소에 세웠던 척화비를 살펴 보았다.

장기 척화비는 1990년 8월 7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24호로 지정되었다.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와 1871년의 신미양요를 치른 뒤 흥선대원군이 쇄국의 결의를 굳히고 온 국민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1871년 4월을 기해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요소에 세운 척화비 중 하나이다. 원래는 장기읍성 안에 세워져 있었으나 1951년 4월에 장기지서 입구에서 찾아 장기면사무소 정문 왼쪽 도로변에 세워 두었다가 1990년 12월 1일 장기면사무소 정원에 이설하였다.사암으로 되었으며 높이 120cm, 너비 45cm, 두께 21cm이다. 사각형 판석으로 6먼을 마연한 다음 앞면에 글씨를 새겨 넣었다.
비문에는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계아만년자손 병인작신미립(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辛未立)즉,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하는 것이요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우리의 자손만대에 경고하노라. 병인년에 쓰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적혀 있다. 대부분의 척화비는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 이후 철거되고 청도와 구미 등에 4∼5기만 남아 있다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구석구석

근민당(近民堂)

근민당은 장기현 관아인 동헌건물로서 현감이 공사를 처리하는 곳이며 노후되어 1922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면사무소로 사용해오다 1986년 복원하였으며 정면 5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이다.

현재 장기면사무소 입구 오른쪽에 척화비와 함께 자리 잡고 있는데 지붕구조와 건물 규모는 원래대로 복원되었으나 내부구조는 약간 변형되었다.

근민당의 사또와 이방
마스크를 쓴 사또와 이방의 모습이 재미있어 촬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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