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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 강경성당 · 국가등록문화재 강경성지성당

by Yeongsik_Im 2023.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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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시의 남부에 위치한 강경읍 주위에는 평야지대가 형성된 곡창지대이자, 서해와 통하는 금강이 있어 강경포구(江景浦口)는 굴지의 수산항으로 하루 1백여척의 배들이 드나 들며 한세기 동안 영화를 누렸던 곳이기도 하다.

또한 강경지역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그해 10월 12일 페레을 주교 다블뤼 신부 등 일행과 함께 라파엘호로 강경 황산포 부근에 도착하여 감격스러운 첫 미사를 봉헌한 한국 천주교회 첫 사목지이다.

주차장에서 바라본 강경성당
라파엘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희년을 맞이하여 재현 복원된 작은 목선 '라파엘호'는 김대건 신부님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탄생' 촬영에 사요오디었으며 논산시의 지원으로 제작 설치되었다.

강경성당

1946년 논산시 부창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으며, 초대 신부는 박귀훈 요한 신부이다. 강경 지역은 일찍이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그해 10월 12일 페레을 주교 다블뤼 신부 등 일행과 함께 라파엘호로 강경 황산포 부근에 도착하여 감격스러운 첫 미사를 봉헌하고 한달정도 구순오 집에 머물면서 성사를 접견하며 교우들을 돌본 한국 천주교회 첫 사목지이다.​

강경성당은 1961년에 건립된 것으로 당시로서는 특이한 구조방식인 첨두형 아치보로 내부를 구성하는 등 현대적 처리가 돋보이는 성당 건축물이다. 건축에 조예가 깊은 보드뱅 신부(1897~1976)의 설계와 감독으로 지어져, 건립 당시의 구조와 형태를 잘 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보존·활용 여건이 양호하며, 당시의 일반적인 건축구조형식을 벗어나 아치 형식의 구조프레임을 사용하여 대형공간을 만드는 등 건축적·종교사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어 등록문화재 650호로 지정되었다. 강경성당 안내문

강경 천주교회
강경성지성당 표지석과 강경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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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성당은 1960년 3월에 성당공사를 착공하여 1961년 2월 13일에 완공하였다. 성당을 설계한 프랑스인 에밀 보드뱅(Emile Beaudevin) 신부는 건축기술에 조예가 깊은 인물로 직접 공사를 감독하였다. 강경성당이 위치한 장소는 본래 논이었던 지역으로 지반이 매우 약해 대형 건축물을 세우기에 불리하였다. 강경성당보다 1년 먼저 지은 사제관 건축에서는 말뚝 기초 방식을 택하였으나 작은 건물(26평)에 너무 많은 말뚝이 소요되어 비합리적이었으므로 오랫동안 궁리 끝에 일종의 배의 원리를 이용한 뜬 구조로 하여 큰 성당을 완공하였다. 실제 건물의 골조뿐만 아니라 외관도 배의 형상이며, 정면 중앙에 높은 사모지붕의 종탑이 있어 돛대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콘크리트로 조성된 특이한 형태의 종탑 지붕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형적인 라이니쉬 지붕(Rhenish Roof)를 단순화한 것이다. 건물 내부는 열주에 의해 공간이 구획되어 있고, 2칸의 제대 양 옆에는 부속실(제의실 등)이 위치하고, 정면 중앙 종탑하부가 주현관이 되며, 양 옆에 부출입구가 있고, 4칸째에 사제관쪽으로 출입구가 돌출되어 있다.

단순한 내부공간 구성이지만 삼각형에 가까운 높은 천장과 노출된 골조가 배의 공간과 같은 분위기를 준다. 강경성당은 당시의 일반적인 건축구조를 벗어나 첨두형 아치를 사용해 넓은 공간을 만든 점이 특징이다. 고딕양식에 많이 사용되는 첨두형 아치는 윗부분이 날카로운 각으로 마감되었다. 또한 외관의 현대적 처리가 돋보인다. 성당건축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기념비적 건물로 건립 당시의 구조와 형태가 잘 유지되고 건축적, 종교사적 가치가 높다

강경성당 전경
김대건신부상과 천주당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동상
천주당은 김대건 신부가 조선인 최초로 사제서품을 받은 중국 상해 김가항 성당모양으로 복원했다.
천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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