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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경북경남

울산 서생포왜성과 창표사

by Yeongsik_Im 2021. 6.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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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서생포왜성과 창표사

 

강과 바다를 접하고 있는 서생포왜성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리 711번지 일원에 있는 서생포왜성(울산광역시 문화재자료 제 8호) 임진왜란 때 서생포진성이 함락된 후 그 인근에 일본군 장수 가토 기요마사가 10만 명을 동원하여 선조 25년(1592년) 7월부터 선조 26(1593)년에 걸쳐 완성한 성이다. 조선시대 서생포지역은 경상도의 경주, 안동, 문경 방면으로 진군하기 위한 군사적 요충지로 강과 바다를 접하고 있어 경상좌수영 휘하의 서생포만호진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서생포왜성

성벽이 길이 2.5km에 이르는 거대한 석성으로 진하 앞바다를 바라보는 해발 209m 높이의 산 정상에서부터 산 아래 쪽으로 크게 제1곽, 제2곽, 제3곽을 차례로 쌓았다. 그 외곽에는 약 60~70도의 기울기를 가지는 경사지 석축성벽이 산 아래 공간까지 약 300m 정도 길게 이어져 있으며, 성벽 바깥에는 해자 등을 배치하여 적의 접근을 어렵게 하였다.

성벽은 현무암제의 자연석을 깨뜨려 만든 작은 돌을 끼워가며 줄눈 흐트려쌓기 했다. 성벽의 모퉁이에는 긴 성돌을 엇갈려쌓기하거나 성돌을 세워쌓기하였는데 성벽의 높이는 6~8m 정도이다. 성내 가장 아래 지역인 제3곽은 마을이 조성되면서 거의 허물어졌으나 동쪽의 구릉지에는 높이 약 10m에 이르는 2단의 석축성벽이 양호하게 남아 있다. 성문터에는 성벽을 폐쇄하거나 고친 흔적이 있으며 북서쪽 장수의 지휘소인 장대터 북측에는 장군수라 불리는 우물터가 남아있다.(국립중앙과학관 - 우리나라 성곽축조과학)

창표당 창표사 전경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서생포왜성 앞에는 임진왜란 공신들을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의 사당인 창표사가 있다.

‘용감한 의병들의 혼을 기린다’는 뜻의 창표당(蒼表堂) 정유재란에 참전한 명나라 제독 마귀(麻貴)가 승전을 기념하는 축하연을 열기 위해 지은 건물로 초가 4칸의 규모였다. 창표사도 의병장들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되었으나 허물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845(현종11년) 기장현감으로 부임한 마귀제독의 후손 마하백이 서생포성에 찾아와 그린 지도에 창표사와 창표당 터를 표기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906년 지역주민들이 기울어 가는 국운을 되살리기 위하여 창표당과 창표사를 중건하였으나, 1938〜1945년에 소실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후 1999년 창표당 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임란공신 추모제를 지내는 한편 복원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에 울주군은 향사 기능과 활용성을 고려 하여 2016년 11월 창표사를 중심으로 일곽을 중건하였다.

2016년 11월 중건된 창표사 뒤로 서생포왜성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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