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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경북경남

보물 제413호 경주 옥산정사 독락당

by Yeongsik_Im 2021.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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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413호 경주 옥산정사 독락당 獨樂堂

솟을대문

독락당은 조선 중기 퇴계 이황의 스승으로 동방오현 중 한 분이라 일컬어지는회재 이언적(1491-1553)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별장으로 옥산정사라고도 한다 . 중종 27년(1532)에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파직되자 낙향하여 처음에는 계정자리 에 3칸의 띳집을 지었으나 뒤에 정혜사 주지의 주선으로 띳집을 헐고 계정과 양진암, 독락당을 잇달아 지었다.

“어진선비도 세속의 일을 잊고 자신의 도를 즐긴다는 이름을 가진 독락당에서 그는 조정으로 복귀할때까지 학문을 닦았다. 독락당은 무엇보다도 주변 경관과 잘 어우러진 공간이다. 건물 옆쪽 담장에는 좁은 나무로 살 을 대어 만든 살창을 달아서 대청에서 계곡을 내다볼 수 있다.(독락당 안내문 참고)

솟을대문에는 측간과 마구간이 한칸씩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별채가 있고 경청재(敬淸齋)가 자리잡고 있다. 본 고택은 1601년(선조34년) 3월 12일 회재 이언적 선생의 손자 휘(講),준(後)과 순(淳). 두 형제가 옥산별업을 봉수(奉守)하기 위해 화의을을 작성하면서 세운 집이다. 선생은 1538년(중종33년) 3월에 청백리에 가자되었다.

청백은 공경지심에서 나온다하여 후손들이 본 집을 경청재(敬淸齋)라 이름하였다.

경청재(敬淸齋)
경청재(敬淸齋) 현판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별채가 자리하고 있다.
경청재 옆 독락당으로 가는 문

독락당 출입문으로 들어가기전 우측 골목으로 가면 자계천이 나온다, 자계천을 따라 내려가면 옥산서원이다.

계정(溪亭)과 자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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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獨樂堂)

사랑채인 독락당(獨樂堂)은 정면 4간 측면 2간으로 서쪽에 정면 1간 측면 2간의 사랑방, 다음 정면 2간 측면 2간과 정면 1간 측면 2간이 대청인데, 이 대청의 중앙 동쪽간에는 기둥과 주선이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에는 이 동쪽간이 온돌방이었다고 추측된다. 막돌허튼층쌓기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초익공으로 결구한 익공집이다.

가구는 오량으로 앞 뒤 평주 위에 대들보를 걸고, 양봉형(樑奉形)의 소로를 짜 넣은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치고, 종보 위에 다시 양봉형의 대공과 솟을합장으로 종보와 결구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아산 맹씨행단의 대공, 솟을합장과 흡사하다.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다.

이 독락당의 동쪽에는 2간 모두 2장의 판문창호를 달았는데, 중간설주가 있고, 판장문을 열면 남북으로 길게 쌓은 담장에 설치한 살창으로 집터 동쪽 아래로 흘러가는 냇물을 내려다볼 수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건축사, 2006. 9. 15., 주남철)

독락당 뒷마당의 약쑥밭은 1553년 (명종 8년) 회재 선생의 아들 전인이 강계적소에서 회재선생을 시측하고 갖고 온 중국산 약쑥인데 지금은 국내약쑥과 혼성이 되어 있다고 한다.

독락당 계정(獨樂堂 溪亭)은 정면 3간 측면 1간으로 우물마루 2간과 온돌방 1간을 놓고 온돌방의 안쪽으로 다시 온돌방 2간을 달아내어 전체적으로는 ㄱ자형평면을 이루고 있다

마당 쪽은 막돌로 마감한 낮은 기단으로 막돌초석을 놓아 기둥을 세웠으나, 계류 쪽은 계류의 암반 위에 직접 높은 기둥을 세우고, 다시 이들 기둥 위에 4개 평주를 세웠다. 가구는 삼량이고, 납도리집 홑처마 맞배집으로 극히 소박하다. 계정의 2간 대청은 앞뒤가 트여, 회재(晦齋) 선생은 이곳에서 바로 아래 터로 흐르는 계류와, 독락당 주변의 반석으로 이루어진 관어대(觀魚臺)와 영귀대(詠歸臺)를 바라보면서 유유자적하였다. 관어대와 영귀대는 아래쪽 옥산서원 주변의 삼대-澄心臺(징심대), 濯纓臺(탁영대), 洗心臺(세심대)-와 더불어 이곳 계류(溪流)가에 오대(五臺)를 이루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독락당 계정1) [獨樂堂 溪亭] (한국건축사, 2006. 9. 15., 주남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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