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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경기도

[한국의 향교 경기도] 이천향교 利川鄕校

by Yeongsik_Im 2021. 1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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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이천시 향교로 1(창전동 336) 망현산 밑에 자리잡고 있는 이천향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2호로 1983년 9월 129일 지정된 조선 초기의 향교이다. 2021년 11월 20일(일) 오전에 방문했으나 개방은 하지 않고 있었다.

이천 향교(利川鄕校)는 조선 초기 태종(太宗)2년 (1402년)에 감무(監務) 변인달이 부임하여 문묘 대성전을 세우고 첫 제향을 하였다고 한다. ​이천이 도호부로 승격된 세종 26년(1444) 이후에 이천향교는 관헌(官憲)이 교수(敎授) 1인을 두었고 교생(敎生) 정원은 90명이었다. 양촌(陽村) 권근(權近)이 지은 이천신치향교기<利川新置鄕校記>에 의하면 신사년(1401) 봄 감무로 부임해 온 변인달이 지금의 안흥동에 있던 안흥정사(安興精舍)에서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고 있는 것을 보고, 절을 학교로 만들 수 없다고 하여 자신이 직접 향교를 세울 자리를 물색하던 중 지금의 위치에 터를 잡으니, 두 물줄기가 합류하는 지점으로 여러 산으로 들러 싸여 형세가 그림과 같았다고 한다. 공무(公務)의 여가에 백성들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신이 직접 감독하니, 임오년 7월에 시작하여 8월 상정(上丁)에 석전(釋奠)의 예를 봉행(奉行)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창건연대는 조선초기로 오래되었으나 현재의 건물들은 모두 조선후기의 것이고 특히 홍살문은 최근의 것이다. 향교의 배치는 경사진 구릉지에 자리 잡아 전면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두고, 후면 높은 곳에 배향공간인 대성전을 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하고 있다. 명륜당은 정면 3칸,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집이고, 동서(東西)양재는 남아있지 않다. 명륜당 뒤편의 내삼문을 들어서면 정면 높은곳에 대성전이 자리잡고 그 앞에 1967년 재건된 동무와 1980년 재건된 서무가 서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2칸 반으로 단층 맞배집으로 익공식 건축이다.
이천향교 안내문 및 이천시청 홈페이지 참조

이천향교 홍살문
이천향교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22호로 1983년 9월 129일 지정됐다.
이천향교 교양강좌 안내
이천향교 외삼문
이천향교 명륜당
명륜당은 정면 3칸,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집이다.
이천향교 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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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촌향교 내삼문
이천향교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2칸 반 단층 맞배집으로 익공식 건축이다.

이천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송조 2현과 아국18현 등 25유현의 위패를 모시고 그 분들의 학문과 인격을 흠모하며 배우고 익히면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행하고 있으며, 푼기와 추기에 석전의 예를 올리고 있다.

이천향교 동무 1967년 재건되었으며 1980년 재건된 서무가 맞은 편에 있다.


평호단의 전설

鳳乎檀의 傳說
옛날에 이천향교(利川鄕校) 주변에는 큰 느티나무가 많이 있 었다.
특히,하절기에는 꾀꼬리 등 각종 새들이 많이 찾아와 새들의 지저귐이 유생(儒生)들의 귓전을 스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정확한 연대는 알수 없으나,향교를 증수(增修)할 때 대목 (大木)들의 망치소라에 놀란 새들이 멀리가고 또한 새의 울음 소리가 들리지 않자 박정수(朴黑壽)씨와 이면용(李黑錯)씨 등 유생들이 먹이를 놓고 새들이 오기를 기리는 고사(告祀)를 지낸 곳으로 전해자고 있다. 지금의 모습은 단출하지만 유생들의 깊 은 뜻은 우리들의 깊은 귀감(編鑑)이 되고 있다.
자료제공: 이천시 관고동 주민들

평호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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