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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경기도

한국의 향교 경기도 용인향교

by Yeongsik_Im 2022. 4.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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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서울 출장후 내려가는 길, 아침부터 비가 내렸지만 예정대로 용인향교 - 양지향교 - 진위향교를 방문했다.  

조선시대 용인향교가 있던 용인현은 생원, 진사시인 소과 139명과 대과인 문과 53명 등 급제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용인향교(龍仁鄕校)는 1986년 용인시 향토유적 제1호로 지정되어 관리되어 왔고,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88호로 2018년 9월 10일 지정됐다.

용인지역에는 용인향교와 양지향교가 있다.

홍살문

향교는 조선 시대에 각 고을마다 유학을 교육하고 유교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다 각 고을의 중심지에는 관아, 사직단(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사드리기 위해 쌓은 단)향교를 설치하여 고을의 기본 틀을 만들고 질서를 바로잡았다용인향교는 용인현의 중심지인 구성에 건립되었다. 법화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 말단부에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장 높은 곳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이 위치하고 내삼문을 두어 신성한 곳으로 구분하였다 그 아래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明倫堂)이 있다. 가장 낮은 곳에는 부속 건물인 충효교육관,용서재,외삼문을 두었고,입구에 향교의 영역을 나타내는 홍살문을 설치하였다.용인향교는 조선 조에 건립된 것으로 주정되는데 최초 설립 후 3차례 옮겨 지었다. 본래 용인현의 동쪽 2리(‘하마비마을' 구 경찰대 후문 인근)에 위치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조선 인조 19년1641에 현의 북쪽 1리(‘구교동,)로 옮겨 지었고 숙종 12년1686에 원래의 터인 현의 동쪽 2리로 다시 옮겨지었다. 1이)0년을 전후한 시기에 현재 위치로 옮겼다잦은 이건에도 대성전은 17세기 경기도 향교 건축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용인향교는 한국전쟁 시 대성전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이 소실됨에 따라 1963년 명륜당을 중건하면서 현재까지 외형적인 모습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용인향교 대성전에서는 매년 음력 8월 27일 공자를 비롯한 25분의 유교 성현에게 석전대제라는 제례를 지낸다. 조선 시대 용인향교는 유학 보급珥 과거 급제를 위한 유교 경전 교육에 중점을 두고 운영하였다. 1900년대에 들어서는 근대 교육의 필요성이 대두됨에 따라 명륜학교가 설치되어 잠시 운영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곧 단절되었고,1980년대부터 충효 교육과 전통문화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교육 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용인향교 안내문

용인향교 외삼문
용인향교 배치도

법화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 끝자락에 자리 잡은 용인향교는 교육공간인 명륜당을 앞에 두고 제사공간인 대성전을 뒤에 두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배치방식을 따르고 있다.

동무와 서무 그리고 동재와 서재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전쟁 당시 대성전을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모두 소실되었다고 한다.

명륜당

외삼문을 들어서면 먼저 정면에 명륜당이 위치하고 있다. 명륜당의 정면은 대성전과 마주하고 있다.

명륜당 팔작지붕을 갖추고 있으며 정면 5칸과 측면 2칸 규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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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 상량
용서재(우측건물)
내삼문
대성전 맞배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이다..

대성전에서는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다. 춘추석전은 예산상의 문제로 가을에만 올리고 있다고 한다.

내삼문에서 내려다 본 용인향교
충효교육관

용인향교에서는 부설 명륜대학 및 충효교육 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수요일에는 사군자·문인화 및 한문을 목요일에는 서예, 금요일에는 서예와 문학 강좌를 실시하고 있다. 문의는 031-284-5020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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