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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경기도

한국의 향교 경기도 용인 양지향교

by Yeongsik_Im 2022.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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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서울 출장후 내려가는 길, 아침부터 비가 내렸지만 예정대로 용인향교 - 양지향교 - 진위향교를 방문했다. 양지향교(陽地鄕校)는 경기도문화재자료 제23호로 1983년 9월 19일 지정됐다.

용인지역 향역에는 용인향교와 양지향교가 있다.

용인향교는 도심속에 위치하고 있으나 양지항교는 조용한 마을 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이었지만 마음 편안하게 돌아 볼 수 있는 매력적인 향교 중의 한 곳 이었다.

향교 입구 좌측에 세워진 안내판에 글처럼

우리가 지키고 사랑해야 할 ···· 마음속의 쉼터

양지향교 홍살문과 외삼문, 홍살문의 붉은색은 귀신이 꺼려해 악귀를 물리치고 안녕과 무병을 기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양지향교는 중종 18년(1523)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이후 숙종 23년(1697)에 대성전이 다시 고쳐졌고 정조 16년(1792)에 명륜당이 다시 건립되었다. 근래에는 1927년과 1967년에 다시 고쳐졌고 1971년에는 명륜당이 복원 되었으며 1981년과 1986년에도 다시 고쳐졌다.

양지향교는 경사진 대지의 아래쪽에는 교육공간인 명륜당이,위쪽 터에는 제사공간인 대성전이 위치하는 전학후묘의 배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명륜당과 대성전만을 갖춘 조선 후기의 소규모 향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 국가에서 설립한 지방 교육기관으로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양민(良民)이상이면 향교에 입학할 수 있었고 시나 문장을 짓는 사장학과 유교의 경전 및 역사를 공부하는 경학이 주요 교육내용이다. 고을의 크기에 따라서 향교의 정원을 조정하였는데 대체로 군에는 50명,현에는 30명의 학생을 수용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토지를 지급하고 그에 따른 세금 수입으로 향교 운영비를 충당하게 하였다.

양지향교 명륜당(사진 좌)과 동재, 우측이 공사청이다.

2012년 발굴조사 이전에는 대성전과 명륜당, 내삼문과 외삼문만 남아 있어 원모습을 잃은 양지향교의 동재와 서재 건물터를 찾기 위해 2012년 5월 15일 고유제(告由祭)를 갖고 발굴조사를 시작했고, 공사청·동재 터를 확인해 양지향교의 원형을 복원하기 위한 고증자료가 확보되었고 2014년 공사청과 동재가 복원하였다.

공사청 (供士廳, 유생들이 석전 등 의식을 준비하는 장소로 의례의 설행<設行>과 제수를 마련하는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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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

명륜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던 것을 1971년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복원했으며 팔작지붕으로 지어졌다.

내삼문

대성전에는 공자를 위시한 5성과 송조2현, 우리나라 18현의 신위를 봉안하였고 매년 8월 27일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대성전 앞면 기둥은 특이한 팔각기둥으로서 경기도에서 유일한 사례이다.

양지향교는 전학후묘의 전형적인 배치방식이지만 명륜당 - 내삼문 - 대성전이 일직선상으로 위치하지 않고 약간 좌측으로 휘어진 상태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동재

조사결과 서재터는 확인하지 못하고 동재터로 확정할 수 있는 건물지도 발굴하지는 못했지만 고지도에 표현된 공사청을 확인했으며 현재 3칸으로 복원돼 있는 외삼문도 1871년에는 부속실이 포함된 정면 9칸의 건물이었음을 밝혀냈다. 한편 명륜당 서쪽에서 확인된 줄기초 건물지가 고지도의 동재 위치와 대략 일치하고 있어 동재의 원래 위치로 추정됐다고 한다.

외삼문 한쪽에 은행나무는 1982년 10월 17일 보호수로 지정된 200여년이 넘게 양지향교의 역사와 함께 해온 나무이다.

양지향교 유림회관

양지향교는 부설 명륜대학에서는 한자서예반, 한글서예반, 사군자반을 운영하고 있다.

양지향교 하마비(사진 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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