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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경기도

[한국의 향교 서울] 양천향교

by Yeongsik_Im 2023.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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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4일 서울 출장길에 일찍 도착하여 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양천향교에 들렸다.

1990년 6월 18일 서울특별시 문화재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된 양천향교는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하나뿐인 향교이고, 현재 양천향교 전교이신 안순복 전교는 향교 역사상 처음으로 취임한 여성 전교이다.

이번 출장길은 대중교통을 이용했기에 지하철로 이동했다.양천향교는 지하철9호선 '양천향교역' 에서 2번 출구로 나가 5~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양천향교에 도착하기 전 '양천현아지' 를 잠시 돌아 보았다.

양천(陽川)이라는 고을의 명칭은 1310년(고려 충선왕 2년)으로부터 시작되는데 가양동 239번지에 있었던 양천현아는 중앙에 현청(동헌)인 종해헌, 그 동쪽에는 객사인 파릉관, 북쪽에는 향교가 있었다고 한다. 이를 일컬어 읍치라 하는데, 반경 200m 이내의 읍치는 우리나라에서 양천현 읍치가 유일하다.

종해헌 남쪽에는 아전들이 있는 길청, 향청의 동쪽에는 장교청, 그 앞의 좌우에 창고가 있었고, 종해헌 부근까지 강물이 들었으며 부근 궁산 기슭에는 소악루라는 누각이 있었는데 그곳의 경치 또한 절경이었다고 한다. 현재 궁산에서 한강변의 경관을볼수 있는 소악루의 현 위치는 원위치가 아니고 파릉관에 부속되어 객사의 동편 산기슭에 위치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당대의 시인 묵객들이 풍류를 즐기던 곳이었다.

현재 관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으나, 양천현령을 지낸 겸재(嫌齋) 정선(鄭敾, 1676-1759)의 〈양천현아〉등 그림을 통해 당시의 건물 배치 형태를 알 수 있다. 정선은 65세부터 70세 되던 해까지 만 5년간 현령으로 근무하면서 이 지역의 명승지들을 진경산수화로 남겼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 따라 2009년 4월, 강서구에서 정선의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진경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양천현아지 인근에 겸재정선미술관을 개관하였다.

양천향교 홍살문
유예당

양천향교 홍살문을 지나면 왼쪽에 전통문화를 선보이고 전수하는 공간인 전통문화마당이 있다. 놀이마당과 객석이 있는 유예당(遊藝堂)은 2007년에 신축됐다.

양천향교이야기

전통문화마당에는 만화로 보는 양천향교이야기 안내판이 있는데 향교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아주 잘 설명되어 있으니 양천향교 관람 전에 읽어 보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양천향 외삼문으로 오른 계단 우측에는 양천향교 표지석과 복원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양천향교는 1980년 11월에 복원공사에 착공하여 1981년 8월에 1차 보수를 하였고, 1986년 7월에 2차 보수와 1994년 6월 3차 보수를 거쳐 2007년 10월부터 2008년 12월 전면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양천향교 1411년 창건됐다.
양천향교 외삼문 계단 왼쪽의 비석군 양천현 관아 주변에 있던 역대 현감들과 현령들의 선정비를 옮겨 세웠다.

양천향교는 궁산 기슭에 세워진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방식으로 외삼문과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대성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은 오르는 계단이 많고 전체적으로 경사가 심한 편에 속한다.

양천향교 개방 시간은 매주 화~일요일 10:00~17:00 까지이며 공휴일에도 개방하고 있다. 사무국은 토,공휴일은 휴무한다. 문묘 참례 안내는 전화 02-2659-0076 으로 하면 된다.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동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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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재
서재
양천향교 터 연혁

조선왕조가 한양으로 천도함과 동시에 유학을 국시로 정하고 유학을 토대로 교육기관을 대확장함에 한양에 성균관과 사학을 두고 각 군 현에 지방 교육기관인 향교를 설립하였다. 본 양천향교도 당시 태종년간(서기1411년경)에 설립되었다.​

향교는 공자님을 큰 선생님으로 모시고 여러 성현의 덕을 기리는 제향 공간인내삼문안에 위치한 대성전과 큰 가르침을 펼치는 강학공간인 명륜당, 동재, 서재 그리고 제향과 강학을 지원하는 부속시설인 교직사등으로 구성된다.​양천향교는 대성전에 5성위와 송조4현 우리나라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석전을 봉행하여 문묘 기능을 하며 유학을 연구 강론하는 지방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년중 제일 큰 행사인 석전대제는 지방수령이 석전제를 올리는 것을 전통으로 하여 본 향교는 강서구청장이 초헌관으로 석전제를 올린다.​구한말 갑오개혁(1894년)으로 과거제도가 폐지됨으로 인해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은 상실되고 문묘기능만 허용되었다. 그 후 1945년 조국광복과 함께 관내 유림들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교궁 중수 및 비품 등을 구비하였다.​

1963년 1월 1일 행정구역 변경으로 경기도 김포군 양동면 가양리에서 서울특별시로 편입되면서 서울시의 유일한 향교가 되었다. 1965년 12월 4일 서울시 향교재단 인가를 받아 경기도 향교재단으로부터 양천향교의 재산을 인수하였다. 같은 해에 대성전과 외삼문을 보수하였다.​1977년부터 1979년까지 3년동안 향교 복원공사 계획을 수립하고 향교 기본재산 처분 승인과 복원사업 승인을 얻어 1980년 11월에 복원공사에 착공하여 1981년 8월에 1차 보수를 하였다.

1986년 7월에 2차 보수와 1994년 6월 3차 보수를 거쳐 2007년 10월부터 2008년 12월 전면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본 양천향교는 1990년 6월 18일자로 서울특별시 문화재 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고, 양천향교에 보관되었던 양천현 홀기가 2009년 3월 5일 서울시 문화재 자료 제44호로 지정되었다.​본 양천향교가 위치한 강서구 가양동은 고구려 시대에는 제차파의현으로 불리다가 신라 경덕왕(재위 742~765)때 공암현으로 고치고 1310년 (고려 충선왕 2년)에 양천현으로 현령을 두었으며, 조선조 1895년(고종 32년)에 양천군으로, 1914년 일제지방행정 개편에 따라 김포군에 병합되었다. 1963년 1월 1일 서울시에 편입되어 영등포구 가양동이었다가 1978년 강서구 가양동으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른다.
양촌향교 터 연혁

명륜당
명륜당 편액

양천향교 명륜당 편액을 보니 成均館長 李載瑞 라고 씌여 있다. 1980년부터 제15.16,17대 성균관장을 지내신 이재서 성균관장의 글씨이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툇마루를 두었다. 전면 5개의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는데 2020년 양천향교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당시 유건 전교가 문묘 공간인 대성전과 강학 공간인 명륜당에 적합한 글귀를 각각 선별했고 양천향교 제27대 원임 전교 백낙춘 님의 글씨체를 음양각 기법으로 서각해 제작했다고 한다.

내삼문
양천향교 대성전

양천향교 대성전에는 공부자의 위패를 중앙 정위로 하여 4성과 송조사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동서로 위차봉안되어 있다. 매월 음력 초하루와 보름 오전 10시에 분향례를 봉행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 두 차례에 걸쳐 석전대제를 거행하고 있다.

지난 자료를 찾아보니 양천향교 대성전 기둥에 주련이 걸려 있는 사진이 있는데 현재 대성전 기둥의 주련은 보이지 않았는데 동재와 서재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대성전과 전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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