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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한국의 서원 경상남도 거창 구연서원

by Yeongsik_Im 2022.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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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은 오랫만에 찾아 보는 것 같다. 우리나라의 향교를 탐방하며 당연히 서원도 함께 돌아보고 있다.

여기서 잠깐 향교와 서원에 대해 설명하자면 향교는 오늘날의 국립 중등 교육기관에 해당하는 곳으로 향학(鄕學) 으로도 불렸으며. 향(鄕)은 수도를 제외한 행정구역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말이고 교(校)는 학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향교는 지방의 학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서원은 향교와 더불어 유교이념에 입각한 지방교육을 담당해 왔던 교육기관으로 향교가 국립 교육기관이었던 데에 비해 서원은 사학(私學)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특히 조선 중기 이후 교육기관으로뿐 아니라 유교적 학술연구의 구심점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거창 구연서원 관수루 居昌 龜淵書院 觀水樓

구연서원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은하리길 100(황산리 769) 국민관광지인 수승대의 경내에 있다.

1540년(중종 35년)에 요수 신권이 서당을 세워 제자를 가르치던 곳이다. 1694년(숙종 20년)에 사림에서 구연서원으로 개칭하여 요수 신권을 향사하고 석곡 성팽년을 배향하였으며 1808년(순조 8년)에 황고 신수이를 추향했다. 뜰에 서원 사적비가 있고 요수 신권을 기려서 세운 산고수장비가 있다.

구연서원은 원래 구연재라 하였다가 1694년 구연서원으로 개칭되었고, 1868년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었으나 문루인 관수루와 강당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관수루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2호

관수루는 요수 신권, 석곡 성팽년, 황고 신수이를 봉안하고 있는 구연서원을 보호하기 위하여 1740년(영조 16년) 황산신씨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정면 3칸, 측면2칸의 2층으로 된 팔작지붕으로 건평 86평의 목조누각이다.

관수루는 까다란 거북이 모양의 자면 바위와 굽은 기둥을 그대로 사용하여 자연과 의 조화를 추구하는 거창 누각의 특정을 잘 반영하고 있는 문루이다.

관수는 〈맹자〉에서 '물을 보는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그 물의 흐름을 봐야 한다. 흐르는 물은 웅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다음으로 흐르지 않는다.’ 라고 한 부분을 인용한 말로,학문은 물을 보듯 책야 한다는 뜻으로 붙인 것이다.

관수루 옆 서쪽 바위에는 욕기암, 동쪽 바위에는 풍우대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는 공자의 물음에 대하여 제자가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 올라가 시가를 읊조리고 돌아오겠다.’ 고 대답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명예와 이익을 잊고 속세를 떠나 아무 속박 없이 조용하고 편안하게 삶을 사는 유유자적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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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연서원관수루기

관수루에는 거창군과 거창문화원에서 걸치해 둔 판상시문 해석판이 있어 관수루 내에 걸려있는 현판들의 내용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다른 문화재에도 적용이 되면 좋을 듯 하다. 사진은 원본을 올려 두었으니 클릭하면 큰 이미지로 볼 수 있다.

구연서원
구연서원 강당
구연서원 편액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겹처마에 합각지붕으로 평면은 가운데에 2칸의 마루를 두고 양측면에 각각 1칸씩의 방을 들였다.

강당은 1945년 실화로 소실되었던 것을 다음해인 1946년에 원형대로 재건축한 것이다.

경앙문
‘덕망이 높을 사람을 위해 우러러 보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경앙문
사당은 1988년에 지어진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규모이며 겹처마에 박공지붕 형식이다.
구연사 龜淵祠
전사청

서원 우측 마당에는 산고수장(山高水长)이라고 쓰인 비와 석곡선생유적비, 그리고 황고신선생사적비가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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