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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한국의 서원 합천 옥전서원

by Yeongsik_Im 2022.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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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 초계면에 있는 합천박물관과 옥전고분군를 방문하기 위해 고령 IC를 나와 907번 도로를 따라 고개를 넘어가다 보면 합천박물관과 옥전고분군 안내판이 반겨 준다. 합천박물관에 다다를 무렵 도로 우측에는 옥전고분군과 옥전서원 안내판이 있는데 우측으로 작은 길을 따라 1km 정도가면 옥전고분과 옥전서원(玉田書院)이 있다.

옥전고분에서 바라본 옥전서원 좌측 언덕에 세워진 건물이 옥전서원이다.

향교와 서원을 답사하여 포스팅하며 설명을 하고 있지만 향교와 서원을 쉽게 설명하자면 향교는 국립 학교, 서원은 사립학교로 생각하면 된다.

향교는 오늘날의 국립 중등 교육기관에 해당하는 곳으로 향학(鄕學) 으로도 불렸다. 향(鄕)은 수도를 제외한 행정구역을 일반적으로 지칭하는 말이고 교(校)는 학교를 의미하는 것으로 향교는 지방의 학교라고 정의할 수 있다.

서원은 향교와 더불어 유교이념에 입각한 지방교육을 담당해 왔던 교육기관이다. 향교가 국립 교육기관이었던 데에 비해 서원은 사학(私學)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해 왔으며, 특히 조선 중기 이후 교육기관으로뿐 아니라 유교적 학술연구의 구심점으로서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여 왔다.

정도결 선생 신도비 비각

서원은 지방의 사설 교육 기관으로서, 학문을 연구하고 선현들의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기능하였다. 합천 옥전서원은 초계 정씨의 시조인 정배걸의 영정을 모셔 둔 문중 서원이다. 정배걸은 고려 현종 8년(1017)에 문과에 장원 급제하였고 중추원 부사로서 지공거가 되었으며, 예부상서와 중추사를 두루 지냈다. 사설 교육 기관인 사숙을 열어 학문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특히 정배걸이 세운 사숙을 홍문공도(弘文公徒)라고 불렀는데, 이 사숙은 고려 시대 사학십이도(私學十二徒 고려시대 개경에 있었던 12개의 사립 교육기관)의 하나로 꼽힌다.

죽은 후에는 그 공을 인정받아 문하시중의 벼슬이 내려졌다.옥전서원은 황강 왼편의 작은 구릉에 남동쪽을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다. 뒤쪽에는 제사를 지내는 제향 사당 공간을 두고 앞쪽에는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 공간을 둔 전학후묘형이다. 제향 공간은 사당인 광산사와 내삼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원 건물은 초계 지역의 유림이 의견을 내어 조선 정조 23년(1799)에 처음 세워졌다. 이후 조선 철종 12년(1861)과 1981년에 고쳐 지어 지금에 이른다.
옥전서원안내문

옥전서원 외삼문

옥전서원(玉田書院)은 1993년 12월 27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 관리되어 오고 있으나 돌아본 결과 방치되어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 더욱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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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전서원

옥전서원의 강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맞배지붕이고 가운데 2칸은 마루로 구성하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두고 있다.

옥전서원 편액
옥전서원 강당의 오래된 현판들
옥전서원 내삼문
광덕사 정면 3칸, 측면은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정배걸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다.
광덕사 편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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