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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한국의 서원 경상북도 경주 동강서원

by Yeongsik_Im 2022.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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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안강읍에서 포항쪽으로 가는 7번 국도를 따라가다 보면 양동마을을 지나 유강터널을 지나기 전 우측으로 동강서원과 형산강역사문화관광공원 이정표가 보이는데 몇번을 지나치다가 7월 19일 옥산서원에 다녀오는 길에 방문했다.

동강서원(東江書院) 소재지의 행정구역을 포항시로 생각했으나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로 포항시와 경주시에 걸쳐 있는 형제산(兄弟山) 중 제산(弟山) 자락에 자리잡고 있었다.

동강서원 비각

주차장에 도착하면 서원으로 올라가는 길 좌측으로 신도비각과 그 앞에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하마비
신도비각
동강서원 배치도

이 서원은 조선 숙종 21년(1695)에 우재 손중돈(孫仲暾. 1 463〜1529)을 향사하고 학문적 덕을 기리기 위 하여 5도 유생이 세웠다. 당시에 숭덕사 • 순교당 • 탁청루• 유도문 등이 있었다. 고종 5년(1868)에 대부분 헐렸다가 1960년 묘우와 강당 • 신문 등을 다시 세웠고, 1986년에 동재 • 서재 • 신도비각을, 1999년에 탁청루를 복원하였다.우재는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계천군 손소의 아들로 점필재 김종직 아래에서 공부하였다.

성종 13년(14 82) 사마시에 합격한 이후 경상 • 충청 • 전라 • 함경도 관찰사와 한성판윤, 도승지, 이조판서 등을 거쳤고 청백리에 선정되었다. 상주목사 시절에는 고을을 잘 다스렸다하여 주민들이 상주 단밀에 생사당을 지어 모셨고, 함경도 관찰사로 있을 때는 만세교를 가설하여 주민들이 송덕하였다.

강당의 구조를 보면 가운데 3칸의 대청을 , 양옆에 각 1칸씩의 온돌방을 두고 앞에 툇마루를 두었다. 여러 행사와 학문 토론 장소로 사용된다. 묘우는 앞면 3칸이고 옆면 2칸의 통칸으로 풍판을 단 맞배집이다.
강동서원 안내문

1996년 1월 20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14호로 지정된 동강서원은 사당인 숭덕사와 강당인 순교당, 동재와 서재, 탁청루, 신도비각, 고직사, 전사청, 활원재, 경각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교육공간을 앞에 두고 제향공간을 뒤에 두는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 방식으로 건립되어 있다.

동강서원의 정문인 2층 누각 탁청루는 1999년 복원되었는데 원래는 5칸이었으나 3칸으로 줄여 복원했다고 한다. 아래 출입문쪽에는 유도문(由道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탁청루와 유도문
유도문
탁청루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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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강서원 강당인 순교당과 동재, 순교당은 3칸의 대청과 양옆에 각 1칸씩의 온돌방을 두고 앞에 툇마루를 두었다
동강서원 순교당 현판
순교당 현판의 글씨는 변암 채제공의 친필 글씨하고 전해진다.

강당인 순교당 좌우측에는 동재와 서재가 있는데 동쪽은 궁리재(窮理齋), 서쪽은 진성재(盡性齋)라 현액되어 있다.

동재 궁리재
동재인 궁리재에는 고양이 가족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서재 진성재
탁청루 측면과 후면
고직사(좌측)와 활원재(우측)
고직사와 전사청
활원재

활원재는 유생들이 거처하며 공부하던 곳으로, 현재는 서원의 큰 행사나 향례 때 사용되고 있다. 포사는 향사 때 제물을 장만하여 두거나 고자(庫子)가 거처하던 곳이며, 전사청은 향례 때 제수(祭需)를 마련하여 보관하는 곳이다.

경주 동강서원은 묘우 삼문 해체 보수공사가 진행중이었다. 8월 22일까지 공사중이라 하니 공사가 끝난후에 다시 한번 방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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