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의 서원

[한국의 서원 경상남도] 산청 덕천서원 · 세심정

by Yeongsik_Im 2022. 9. 21.
728x90
반응형

대전통영고속도로 단성IC를 나와 20번 국도를 타고 지리산쪽으로 가다 보면 산청군 시천면이다.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천왕봉이 위치한 청정지역인 시천면은 낙동강의 발원지 강 상류로부터 흐르는 물이 화살과 같이 빠르다하여 矢川(화살시,내천)으로 불리고 있으며 물이 빠르고 계곡이 깊고 주변경관이 산자수명하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명품곶감으로도 유명한 시천면은 영남학파의 거목으로 선비의 고장인 산청을 대표하는 인물인 남명조식 선생이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오늘은 산청군 시천면의 남명조식유적지에서 남명조식선생의 경의사상과 선비정신을 일깨워 본다. 먼저 남명 조식의 제자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덕천서원에 들렸다.

덕천서원 홍살문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원리에 위치하고 있는 산청덕천서원(山淸德川書院)은 1974년 2월 16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시정문, 경의당, 진덕재, 수업재, 숭덕사, 제기고 등이 있으며 건물의 배치는 전면에 교육공간인 경의당을 두고 그 뒤에 사당인 내삼문과 숭덕사를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로 일직선상에 건립되어 있다.

덕천사원 외삼문 시정문
시정문 편액 글씨는 약헌(約軒) 하용제(1854~1919)가 썼다고 전해지고 있다.

서원은 선현에 대한 제사와 교육 기능을 수행하던 조선시대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산청 덕천서원은 선조 9년(1576)에 남명 조식(南冥 曹植 1501~1572)의 제자들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선조 35년(1602)에 중건되었고, 광해군 원년(1609) ‘덕천’이라는 이름과 토지, 노비를 국가로부터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7년(1870)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20년대에 복원되었다. 서원의 정문인 시정문(時靜門)을 들어서면 강당인 경의당(敬義堂)을 중심으로 그 앞에 유생들의 생활공간인 진덕재(進德齋), 수업재(修業齋)가 있고 뒤편에 제례를 지내는 사당인 숭덕사 (崇德祠)가 배치되어 있다.
경의당은 마음을 올바르게 하는 ‘경’과 그것을 실천하는 ‘의’를 중요시하였던 남명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경의당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사당인 숭덕사에는 선생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데 현재도 봄, 가을에 두 차례의 향례를 올리고 있으며 선생의 덕을 추모하는 남명제(南冥祭)를 지내고 있다
산청 덕천서원 안내문

시정문(時靜門)을 들어서면 강당인 경의당을 중심으로 그 앞에 유생들의 생활공간인 진덕재와 수업재가 있다.
덕천서원 동재 진덕재
진덕재 편액
덕천서원 서재 수업재
수업재 편액
수업재 장마루

728x90

덕천서원 편액

임금이 현판을 직접 내린 사액 서원인 德川書院(덕천서원)의 글씨는 남명의 수제자인 정인홍의 제자 배대유가 쓴 것이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敬義堂(경의당)의 글씨는 출입문인 時靜門(시정문) 편액의 글씨를 쓴 하용제가 썼다고 한다.

덕천서원의 강당인 경의당 현판은 안쪽에 걸려있다.

마음을 올바르게 하는 ‘경’과 그것을 실천하는 ‘의’를 중요시하였던 남명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경의당이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경의당에는 경의당 중건기와 경의당중건상량문 등 현판들이 걸려 있다.
덕천서원 경의당에서 문화관광해설사가 덕천서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경의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현재 건물은 1926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고 누마루를 두었다.

경의당 뒷면
내삼문
숭덕사
숭덕사 편액
숭덕사는 3칸으로 된 사우(祠宇)로 조식의 위패와 최영경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덕천서원을 찾은 전주향교 유림들이 숭덕사에서 참배히고 있다.
숭덕사 옆 제기고

덕천서원은 배롱나무가 아름답기로 소문이 나 배롱나무꽃이 만개하여 절정을 이룰 때에는 많은 사진작가들이 찾는 배롱나무 사진촬영 명소이기도 하다.

 

세심정 (洗心亭)

덕천강변에 덕천서원 유생들의 휴식처로 세워져 있는 세심정은 남명조식선생의 제자 수우당 최경영이 세운 정자로 선조 15년(1582)에 처음 세웠다. 세심정이라는 이름은 주역의 성인세심(聖人洗心)에서 유래되었다.

좌측의 시비에는 조식남명선생이 거창 포연대에서 목욕 후 지었다는 욕천(浴川) 이 새겨져 있다.

 

浴川(욕천)  曹植(조식)

全身四十年前累 (전신사십년전루) 온몸의 사십 년 전의 허물을
千斛淸淵洗盡休 (천곡청연세진휴) 천 섬의 맑은 물로 다 씻어 좋게 하리라
塵土倘能生五內 (진토당능생오내) 티끌이 혹시라도 오장에 생긴다면
直今刳腹付歸流 (직금고복부귀류) 지금 당장 배를 갈라 물에 흘려보내리라

세심정 편액

세심정은 덕천서원이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자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덕천서원을 다시 복원되는 1930년 경에 현 위치로 2칸이었던 것을 1칸으로 복원하여 옮겨 지었다고 한다.

세심정기
세심정 앞으로 흐르는 덕천강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