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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경상북도

한국의 향교 탐방 경상북도 구미 인동향교

by Yeongsik_Im 2022. 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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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구미지역을 경유했다. 먼저 인동향교를 들렸으나 문이 닫혀 있다.

향교를 방문할때마다 느끼지만 대부분의 향교는 문이 닫혀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코로나로 인해 개방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하기도 하지만 향교는 원래부터 개방을 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대설위 향교들은 그래도 대부분 개방을 하고 있지만 중·소설위 향교들은 대부분 문을 굳게 닫아 놓는다. 그래서 향교를 방문할때는 대부분 삭망으로 분향례를 봉행하는 날이나 석전대제에 맞추기도 한다.

최근에는 문화재청의 향교·서원 문화재 활용사업으로 인해 각 향교마다 많은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고 이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모습을 보면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아직 더 많은 지원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관리도 어렵고 볼거리도 없어 찾는 이들도 없다고 문을 걸어 잠그고만 있으면 더욱 빨리 퇴락해질 것이다. 이제 발상을 전환하여 향교의 문을 활짝 열고 살아 숨쉬는 향교로 만들어 보자.

인동향교는 198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에 있는 인동향교는 정확하게 어느 시기에 건립되었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전기의 어느 시점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인동의 북쪽 2리 지점인 황상동의 어운산 자락에 향교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었고, 임진왜란 직후인 1601년(선조 34)에 안태동으로 옮겨 다시 지었으나 지반이 무너지는 참화를 당하였다. 이에 1634년(인조 12) 경상감사 이기조(李基祚)의 건의로 옥산의 서쪽으로 다시 이건하고, 이듬해 위패를 봉안하였다. 1987년 임수동에 부지를 확보하고 이전 중수에 착공하여 이듬해에 완공하였다

인동향교 외삼문
인동 각처에 산재해 있던 역대 현감 및 부사의 선정비, 불망비, 거사비 등 비석 13기를 모두 이곳에 옮겨놓았다.

외삼문이 닫혀 있어 외부에서만 돌아보았는데 경내 건물로는 외삼문과 명륜당, 동재와 서재, 대성전과 내삼문이 현존하고 있으며, 대성전 앞의 좌우 동무와 서무는 노후되어 철거되었고, 지금은 주춧돌 등 유지만 남아 있다.

서재쪽 담장에서 바라본 명륜당

동재쪽 담장에서 바라본 명륜당

구미 인동향교 명륜당은 공(工)자형 지붕으로 독특한 양식을 한 유례가 드문 건물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이런 공(工)자형 지붕은 단성향교 명륜당, 영양향교(경북 문화재자료 제75호) 명륜당에서도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유생들이 기숙을 하며 공부했던 동재 (東齋) 와 서재는 최근에 새로 지은 듯 하다.

인동향교는 경사지에 설치된 향교의 일반적인 형태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로 앞쪽에는 공부하는 공간인 명륜당을 뒤쪽은 제향영역인 대성전을 두고 있다.

인동향교 내삼문과 대정전

대성전에는 공자와 그의 제자인 맹자, 증자, 안자, 자사 등 중국 5성(五聖), 송나라 2현(二賢)인 정호, 주희, 그리고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인 설총, 최치원, 안향, 정몽주,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등 모두 25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丁자가 들어가는 초일인 상정일(上丁日)에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인동향교 대성전

인동향교에서 낙동강변쪽으로 100여미터 내려가면 동락서원이 있고 바로 앞이 동락 신나루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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