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방방곡곡/전북전남

한국의 보물 전라북도 임실 진구사지 석등

by Yeongsik_Im 2022. 7. 25.
728x90
반응형

전라북도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 북창마을에는 거대한 석등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두번째로 큰 석등인 임실 진구사지 석등(任實 珍丘寺址 石燈)이다. 가장 큰 석등은 국보 제12호인 화엄사 석등이다.

보믈 제 267호인 진구사지 석등은 아쉽게도 윗 부분이 파손되어 원래 모습은 손상되었지만 섬세하고도 정교한 문양이 돋보이는 웅장하면서도 비례가 잘 어울려 안정된 모습으로 당시 진구사의 위상을 엿보게 하는 걸작이다.

임실 진구사지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높이는 5.18m이다.1992년부터 2001년까지 진행한 발굴 조사에서 '진구사' 명문 기와가 출토되자 이전 명칭인 용암리사지 석등을 진구사지 석등으로 바꾸었다.진구사는 7세기경 고구려계 적멸과 의융이 창건한 이래 통일신라시대에는 열반종 사찰 이었다가 고려시대에는 조계종 사찰에서 천태종 사찰로 바뀌었고, 조선 전기인 태종 7년(1407년)에는 88개의 자복사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석등의 팔각 받침대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안상을 새기고, 그 위에 올린 연화대석에는 팔각으로 연화문을 새겼다. 석등의 끝에는 큼직한 귀꽃을 달아 장식하였다. 석등은 북 모양의 간주석을 사이에 두고 상대석의 양련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또한 화사석 위로 옥개석을 두었으며,옥개석 추녀 끝에 큼직한 귀꽃을 세웠다. 석등은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경쾌한 모습이 섬세한 문양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임실 진구사지 석등 안내문

임실 진구사지 석등
임실 진구사지 석등 후면

팔각의 받침대에 새진 연꼭과 구름무늬, 그리고 가늘고 길다란 안상(眼象)은 오랜 새월이 흘렀음에도 아직 산명히 남아 있고 큼직한 귀꽃으로 장식된 덮개는 웅장한 느낌이다.

노반과 귀꽃
귀꽃

728x90

화창
양련
고복형 간주석
복련
양련의 문양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 좌상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82호인 임실 진구사지 비로자나불은 지혜와 광명을 형상화한 부처를 말하며, 법신불(法身佛)이라고도 한다.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 좌상은 통일신라 후기인 860~870년대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좌상은 머리에 육계가 솟아 있는데 그 높이가 윤곽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낮다. 두 손은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오른손의 손가락으로 왼손의 손가락을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양어깨를 감싸고 흘러내린 대의(大衣)는 배 부분에서 세 줄로 만든 나비 형태의 띠 매듭으로 표현되어 있다.

연화좌대(蓮華坐臺)의 하대 상석에는 8면에 안상과 사자를 새겼고,중대석에는 8면에 보살좌상을 새겼다. 보살좌상은 결가부좌한 두 손을 가슴 부근에서 합장하고 있다. 중대석 위아래에 복련과 앙련이 새겨져 있다. 이 석불은 1920년부터 중기사에 모셔져 있었는데 2014년 진구사지 경내로 옮겼다.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 좌상

보물 제267호 ‘임실 진구사지 석등'과 1978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제 제82로 지정된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는 임실 진구사지(任實 珍丘寺址)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임실 진구사지와 약 1km 떨어진 신평면 가덕리에서 발견된 임실 가덕리 하가 구석기 유적은 섬진강 신평천 구간에 위치한 것으로 구석기시대 경관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장점이 있어서 섬진강 신평천의 맑은 물을 따라 걸으며 임실 진구사지 일대에 피어난 통일신라시대 불교문화를 돌아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는 곳이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