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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경북경남

남명 조식의 발자취를 따라 산청 조식 유적 남명기념관

by Yeongsik_Im 2022. 1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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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지정문화재 사적 305호(1984년 1월 26일 지정) 산청 조식 유적은 조선시대의 학자인 남명 조식의 학문 연구와 인재 양성의 혼적을 볼 수 있는 사적지이다.

조식 유적은 사리와 원리 두 곳으로 나뉘어지 있다. 사리에는 산천재와 선생의 묘소, 신도비,여재실 등이 있고, 원리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청 조식 유적 중 덕천서원산천재는 블로그에 먼저 소개했다.

그런데 경남 산청의 남명조식선생의 유적지를 돌아보다 보니 이정표에는 남명조식사적지, 안내판에는 산청 조식 유적, 남명 조식 유적지 등 다르게 표시하고 있어 찾아보니 문화재청과 산청군 홈페이지에 산청 조식 유적 (山淸 曺植 遺蹟) 으로 쓰고 있다.

조식유적에서 산청 조식 유적으로 명칭변경 되었다.(2011.07.28 고시)

남명 선생 영정 조원섭 그림

남명은 지금의 합천군 삼가면에서 태어나 아버지 조언형이 과거에 급제하면서 서울로 옮겨가 살았다. 아버지가 새상을 떠난 후 30세가 되어 처가인 김해 신어산 아래 산해정을 지어 학문에 정진하었고I 48세부터는 고항인 합천 삼가에 뇌룡정을 지어 학문을 연마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퇴계 이황과 함깨 영남지역을 대표하는 학자로 그 명성이 알려저 조정에서 수 차례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앙하여 그 명성이 더더육 높아졌는대, 특히 영풍 10년(1555)에 내려진 단성헌감을 사앙하며 임금에게 올린『단성번감사직소』를 통해 정치현실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명종16년(1561) 지리산 덕산동(현재 산청군 시천면)으로 이주하여 산천재를 짓고 인재 양성에 힘쓰며 당시의 정치적 모순과 민생안정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혁방안을 제시하였다. 72세에 생을 마감한 후 영의정으로 추중되고 문정(文貞)이란 시호가 내려졌다.<남명기념관 안내문 참고>

남명기념관은 건너편에는 남명이 제자를 가르치던 산천재가 있으며 경내에 남명조식선생의 상과 신도비 둥이 있고 덕천서원과 별도로 문중에서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여재실이 있으며 그 뒷산에 묘소가 있다.

남명기념관 입구
남명기념관 출입문인 성성문(惺惺門)

남명기념관은 남명 조식의 탄생 500주년을 맞은 2001년 설립을 추진해 2004년 8월에 문을 열었다. 남명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유품과 관련 자료들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남명기념관에 들어서면 왼쪽에 옥돌로 만들어진 남명선생의 동상이 지리산을 등지고 서 있고 옆에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지은 것으로 선생의 학문과 사상을 잘 나타냈다.

남명조식선생의 상
신도비
남명선생신도비문 국역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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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선생이 단성현감을 사직하며 명종께 올린 상소문

남명기념관은 ㄷ자형 건물로 오른쪽에 관리실과 기념품 판매점이 있고, 정면과 왼쪽이 전시실이다. 제1전시실에는 선생의 유품과 문집, 유묵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제2전시실에는 문인들의 활동상황과 문집, 유목 등이 전시되어 있고 제3전시실은 원임록, 원생록, 문묘와 남명학 연구 현황을 살펴볼 수 있다.

남명기념관은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이다.

기념관 추윽에는 여재실이 있다.
여재실
여재실 현판과 별묘중수상량문

이곳은 남명선생과 정경부인(貞敬夫人), 숙부인(淑夫人)의 위패를 모시고 후손들이 제사를 드리는 가묘(家廟)이다. 가묘는 서원의 사당(祠堂)과 구별하여 별묘(別廟)라고도 한다.

여재실의 이름은 『예기(禮記)』에서 따온 것으로 ‘비록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늘의 진리는 언제나 존재 한다’ 라는 의미이다.

매년 가묘에 모신 세 분의 기일(忌日)과 설, 추석, 그리 고 동지에는 후손들이 이곳에 모여 제향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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