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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 거창 옛 자생의원

by Yeongsik_Im 2023.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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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사과테마파크를 관람하고 거창읍내로 들어와 거창 지역의 최초 의료시설이었던 옛 자생의원을 방문했다. 거창근대의료박물관 구 자생의원은 경상남도 거창군 시장1길 골목 국민은행과 마주하여 위치하고 있다. 2013년 10월 29일 국가등록문화재 제572호로 지정되었다.

옛 자생의원(慈生醫院)은 1954년에 건립된 거창 지역 최초 근대 의료 시설이다. 설립자는 서울대의과대학 제1회 졸업생이신 성수현(成守賢, 1922~2008) 원장으로 6·25 한국전쟁에 군의관으로 참전하였다가 부상을 당해 제대하면서 거창읍에 병원을 개원하였다.

1950년대에 개원되어 거창 의료의 중추적 역할을 다하다가 2006년 문을 담았다. 거창 군민의 집단 기억의 저장고인 자생의원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처지에 놓이자 유족들이 시설을 기부하고 거창군에서 부지를 매입하여 보존하게 되었다.

의원동, 주택동, 입원동이 동일 구조 및 일체화된 지붕으로 건축되었고, 주택동은 별도의 출입구와 마당율 두어 의원동과 분리되게 구성하였으며, 의원동에 접한 입원동은 'ㄷ’ 자 형태의 툇마루로 별동의 단충병동과 연결되어 있다.

거창 구 자생의원은 본관, 입원동, 의사 거주 주택동을 완벽하게 갖춘 해방이후 건립된 지방 근대 의료 시설로 당시 의료 현실을 생생하게 살필 수 있는 공간으로 보존가치가 높아 문화재청 둥록문화재 제572호로 2013년10월 29일 지정받았다.

자생의원의 역사성율 이어가고자 2016년 12월 27일 거창근대의료박물관으로 개관하였다. <엣 자생의원 안내문 참고>

거창 구 자생의원은 의원동, 주택동, 병동이 동일 구조 및 일체화된 지붕으로 건축되었고, 주택동은 별도의 출입구와 마당을 두어 의원동과 분리되게 구성하였으며, 의원동에 접한 병동은 ‘ㄷ’자 형태의 툇마루로 별동의 단층병동과 연결되어 있다.

현재 관람을 위한 출입은 주택동을 통해 입장해야 한다.

관람시간은 .10:00~17:00이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과 추석연휴는 휴관한다. 거창읍내 골목에 위치하고 있어 별도의 주차장은 없다.

거창 명약 만령단

거창 만령단

거창 만령단은 거창의 토성인 거창신씨 문중에서 5대에 걸쳐 대대로 전승되어 온 신비의 영약으로 신경통, 중풍을 다스리는 명약을 말한다. 이 약은 신병권(愼業權, 1767-1817) 선생이 거창읍 강양마을에서 한방의를 경영하면서 처음 조제되었다.

어느 날 강원도에서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온 스님을 1년 8개월 동안 정성껏 치료하고 얻은 처방이 바로 만령단 비방으로

전설에 의하면 이 처방전을 주고 떠난 스님이 바로 구곡산(九曲山:거열산성이 있는 아홉산) 신령이었다고 한다.

‘만령단’ 이라는 약 처방을 지어주면서 ‘이 약 한 알에 한 냥 이상도 이하도 받지 말라’ 는 유지와 함께 반드시 장손에게만 승계하고 장손이 없을 경우에는 양도치 말고 폐업하라고 하셨다고 한다.

스님이 주신 보은의 약처방으로 거창 만령단은 병권(1 대, 1767-1817) - 상로(2대, 1797~1857) - 영범(3대, 1851〜1897) - 용직(4대, 1891~1964) - 원재 (5 대, 1912~1980) 선생으로 200여 년간 이어졌다. 특히 4대 신용직(1891~1964) 선생 대에 이르러 1917

년에 매약업자 제조 허가를 얻어 국내는 물론 일본, 만주, 중국, 인도까지 그 판로가 확장되어 신경통, 중풍으로 고통 받는 수많은 난치병 환자를 치료하였다.

거창 만령단의 효능은 중풍증, 관절신경통, 견비통증, 좌골신경통, 편두통, 각기증, 골절통, 산후풍증, 안면신경마비증, 요통, 근육통, 뇌풍증 등 모든 염증에 특효가 있었다.

5대 신원재(1912〜1980) 원장에 이르러 다음 장손으로 승계되지 못하고 그 명맥이 다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신중명(1944년생) 선생이 만령단 자료를 근대의료박물관에 기증하셨다. <거창 만령단 안내문 참고>

자생의원 본관 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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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의원은 종합병원이 부족했던 지역의 의료서비스를 담당했던 지역 의료시설의 대표적인 의료시설이다. 자생의원은 의원 본관과 병동 그리고 의사가 거주하는주택으로 구서오디었는데, 1950년대에 건축된 지역의 의료시설중 의원 본관과 병동 그리고 주택을 완벽하게 갖춘 의료시설이 보고된 바 없다는 점에서 자새으이원이 갖고 있는 의료사적 가치는 물론 근대문화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판단된다.

자생의원은 대도시의 의료시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원형이 거의 남아있지 않는 지역의 근대기 의료시설의 모습을 완전하게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료사뿐 아니라 근대건축사적 의미가매우 큰 건축물이다. 특히 해방과전쟁을거치며,건축주와지역의 기술자에 의해 건축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6.25전쟁 직후 건축 불모기에 지어진 근대건축물로서의 희소성도 갖고 있다.

특히, 의사의 진료와 치료동선 체계가 반영된 자생의원의 의원본관의 공간구성과 전통주거에서 근대주거로 전이되는 과정의 모습을 담고 있는 주택의 경우 건축사적 의미가 매우 큰 부분이다.

병동 역시 배치는 물론 단위 입원실의 설계가 대지조건에 순응하면서도 지역사회의 의료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병동의 입원실은 최소규모로 설계되었으나 각 실은 독립적으로 난방은 물론 추|사가 가능하도록 연탄 아궁이에 의한 온돌 난방시스템을 채택 하였는데,입원환자는 각 실에 위치한 연탄아궁이 옆에 미니부엌을 만들어 병동에서 취사를 해결하였다.

이는 자생의원의 병동이 1960년대 지역의 의료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해주는 역사적 시설일뿐 아니라, 마당을 가진 병동만이 가질 수 있는 지역사회의 집단 기억의 저장고였음을 의미한다. <자생의원 안내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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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생의원은 해방 후 거창에서 의료서비스를 담당해온 대표적인 의료시설이 갖는사회사적 의미 외에도 거창군민의 집단기억이 의원본관과 병동에 농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매우 크다.

특히 근대문화유산은 기성세대의 가치와 판단으로 보존하지만 이를 사용하는 주체는 후속세대 라는 점에서 근대문화유산은 기성세대의 가치를 후속세대에 전해주는 메신저이자 세대 간의 간극을 메워주는 브릿지(다리)역할을 한다고 할수있다.

특히, 거창군민의 집단기억의 보고인 자생의원이 문화를 매개로 새로운 집단기억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 자생의원이 갖는 당대의 사회사적 가치는 물론 근 미래의 잠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판단된다.<자생의원 안내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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