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방방곡곡/경북경남

경주 김유신묘 · 흥무로 벚꽃길

by Yeongsik_Im 2024. 3. 20.
728x90
반응형

경주버스터미널을 지나는 길, 형산강을 건너는 서천교를 지나 우회전하면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가운데 하나로 선정되었던 '흥무로 벚꽃길'이 나온다. 그 벚꽃길을 지나면 좌측으로 옥녀봉 능선에 신라 통일에 큰 공을 세운 김유신 장군의 묘가 자리잡고 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매표소가 있으나 무료로 입장 가능했다. 김유신묘는 경북투어패스 자유이용시설이다.

경주시는 현재 2억 5천만 원 예산을 들여 유료 입장권 인증 이벤트로 온누리 상품권을 지급하는 관광 빅세일과 단체관광 인센티브 2가지 이벤트를 선보였다. 유료 입장권 인증 이벤트는 경주시와 경주시시설관리공단이 운영하는 화랑마을, 토함산자연휴양림 등 3곳의 숙박시설과 동궁원, 양동마을, 동궁과월지, 금관총 등의 관광지 11곳, 총 14곳이 대상이다.

주차장에서 흥무문으로 오르는 길에 벚꽃이 만개해 있다.
흥무문
경주 김유신묘

신라의 삼국통일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김유신(595〜673)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15세에 화랑이 되었다. 후에 태종무열왕이 된 김춘추와 혈연관계를 맺어 정치적 발판을 마련하였고, 여러 전투와 내란에서 큰 공을 세웠다. 660년에 백제를 정벌하였고 668년에 고구려를 정벌하였으며, 당나라 침략을 막아 삼국통일의 일등 공신이 되었다. 이후 흥덕왕 때 홍무대왕으로 추봉(죽은 뒤 관위를 내림)되었다.

문무왕은 비단 1,000필, 벼 2,000석을 내리고 군악고취 100명을 보내어 장사를 지내게 하며 비를 세워 공적을 새겨두고 수묘하는 백성을 배정해 주는 등 최고의 예를 베풀었다고 한다.

김유신묘는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21호로 지정되었다

김유신묘의 봉분은 30m에 달하는 큰 원형분으로 둘레에는 24장의 호석과 돌난간을 둘렀고 호석과 돌난간 사이의 바닥에는 돌을 깔았다. 그 무덤의 양식 또한 왕릉이나 다름없는 규모와 형태이다.

송화산 옥녀봉에서 동쪽으로 뻗은 능선 위에 있는 김유신묘는 둥근 무덤 둘레의 둘레돌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긴 버팀돌을 같은 간격으로 배치하였다.

무덤 앞 서쪽과 동쪽에 각각 조선 숙종 36년(1710)과 1934년에 세운 비석이 있다. 삼국사기에 금산원에서 장사를 지내고 그의 공덕을 기리는 비석을 세했다고 전하는데, 당시 세운 비석이나 혼적이 남아 있자는 않다.

728x90

 

경주 김유신묘 유튜브

무덤 앞 서쪽과 동쪽에 각각 조선 숙종 36년(1710)과 1934년에 세운 비석이 있다.
조선 숙종 36년(1710)에 세운 비석
1934년에 세운 비석
무덤 둘레의 둘레돌에 새겨진 십이지신상

둥근 무덤 둘레의 둘레돌에는 십이지신상을 새긴 버팀돌이 같은 간격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개의 경우 능을 지키는 수호신으로는 갑옷을 입은 조각들이 새겨져 있으나, 김유신 묘의 12지신상은 평복을 입고 무기를 들었다. 몸체는 정면을 보고 서 있으나,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주시하는 모습이 이색적이며 무장을 하지 않아 매우 온화해 보인다. 경주왕릉에는 몇 군데 지신상조각이 있으나 조각의 우수함이나 상의 거대함으로는 김유신묘를 따를 수 없다고 한다.

김유신묘 주차장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대왕 김유신 신도비

이 비석은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김유신 장군595-673의 일대기를 기록한 신도비이다. 김유신은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관산성전투에서 백제의 성왕을 사로잡은 김무력*장군이다. 아버지는 만노군, 현 충북 진천 태수를 역임한 소판 김서현이고, 어머니는 숙흘종의 딸인 만명부인이다.

신라 진평왕 17년(595)에 만노군에서 출생하였으며, 젊어서는 화랑으로서 수많은 낭도들을 이끌며 중악석굴 등 명산대천에서 수련하며 기상을 키웠다.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탁월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여 밖으로는 백제와 고구려를 상대로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나라를 지켰으며, 안으로는 비담과 염종의 반란을 진압하여 나라를 안정시켰다.진덕여왕이 후사 없이 훙거하자 김춘추를 태종무열왕으로 옹립하였으며, 삼국통일전쟁의 신라군 총수로서 백제와 고구려를 통합하고 당나라 군대를 몰아내어 삼한일통의 대업을 이룩하였다.

고구려를 통합한 이후 태대각간에 봉하여졌으며, 문무왕 13년(673)에 7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 금산원에 묻혔다. 흥덕왕 10년(835)에 공적을 기려 흥무대왕으로 추봉되었으며, 조선 명종 18년(1563)에 서악서원에 제향되었다.국자박사 설인선에게 명하여 공명을 기록한 비석을 세웠다고 하나 전하지 않으며, 현재의 비석과 비각은 1966년에 세워진 것이다. 비문은 1933년에 정인보가 지었으며, 이를 이세호가 1956년에 써서 후손인 김형배가 새겼다. 비석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는 262cm이다.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대왕 김유신 신도비 안내문

 

사적 제21호인 경주 김유신묘는 매표소, 흥무문, 김유신묘, 신도비와 함께 승무전, 금산교육관, 금산재로 이루어져 있다. 주차장 매표소 옆에는 역사와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영상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는 스마트 홍보영상관이 설치되어 있다.

흥무로 벚꽃길

흥무로 벚꽃길은 아직 벚꽃을 볼 수는 없지만 벚꽃축제 준비가 한창이다. 이번 주말에 비가 내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고 벚꽃 개화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 이에 19일 경주시는 22일부터 24일까지 황남동 대릉원 일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벚꽃축제도 29일부터 31일까지 연기했다.

2007년 건설교통부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흥무로 벚꽃길은 경주터미널에서 형산강을 건너는 서천교를 지나 첫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면 만날 수 있다. 도로 양쪽에 선 아름드리 벚나무가 가지끼리 맞닿아 하늘을 가려 아름다운 벚꽃터널이 완성되고 여름은 초록대로, 가을은 단풍대로 아름다운 곳이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