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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한밤마을 돌담길 · 대율리 대청 · 남천고택

by Yeongsik_Im 2024.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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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의 제주도라 불리는 '대율리 한밤마을'은 정겨움이 있는 돌담마을로 천년을 이어온 전통마을이다.

고려 중기 재상을 지낸 부림홍씨 입향조인 홍란이라는 선비가 이주해오면서 마을 이름을 대야(大夜)라고 불렸으나 이후 밤야(夜)자 대신 대율(大栗)로 고쳐 부르게 되어 대율리 한밤마을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목적지는 제2의 석굴암으로 불리웠던 군위 삼아미타여래존석굴이었으나 도착전 도로변에 있는 군위한밤마을 이정표를 보고 차를 돌렸다. 조금 가다보면 한밤마을을 상장하는 조형물이 반겨준다.

어짜피 군위 아미타여래삼존석굴은 한밤마을과 서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으니 어디를 먼저 가든 함께 돌아보는 것이 좋다.

돌담을 활용하여 한밤마을의 돌과 솟대를 모티브로 하고 한밤마을의 아이덴티티를 적용한 조형물로 도로 한가운데 세워진 것으로 마을사람들은 '성안 문'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성안문 꼭대기에는 기러기 세마리를 올려놓았다는데 자세히 보니 훼손된 듯 하다.

성안 문을 지나면 한밤마을 주차장이 있고 오른쪽에 '성안 숲'이 있다. 이 솔밭은 예로부터 대율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곳으로 동제를 드리는 솟대가 있는 신성한 곳이다.

솔숲에는 임진왜란 때 신녕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홍천뢰 장군 추모비와 홍영섭 효자비가 세워져 있다.

솔밭 뒷편 폐교가 된 대율초등학교에는 카라반 5대, 글램핑 1동, 일반 야영장 31면의 한밤솔담길 오토캠핑장이 조성되어 있다.

홍천뢰 장군 추모비와 홍영섭 효자비

한밤마을 돌담길

군위군 한밤마을은 팔공산 북쪽 자락에 위치해 있어 경치가 수려하고 마을 전체의 집들이 북향으로 배치되어 있는 점이 특별하다. 마을의 대부분은 전통 한옥 구조로 지어졌으며 담장은 경오년(1930년) 대홍수로 떠내려 온 돌들을 이용하여 축조한 돌담으로 그 길이를 이으면 6.5Km가 된다고 하여 ‘내륙의 제주도’라고도 불린다.

봄이면 돌담 뒤의 벚꽃나무 한그루를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군락지의 화려함은 아니지만 옛 가옥과 돌담을 배경으로 한 한그루 벚꽃나무의 풍경은 이미 SNS 성지로 유명해 졌다.

한밤마을 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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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율리대청

골목길에 위치한 ‘군위 대율리 대청’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62호로 조선 전기에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서 없어지고 인조 10년에 다시 지어져 학교처럼 사용하다가 현재는 마을의 경로당으로 사용 중인 전통건축물이다.

대율리 대청

대율리 대청은 조선 전기에 세의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서 없어졌다.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어 학교처럼 사용되었다. 효종 2년(1651)과 숙종 32년(1705)에 각각 손보고 고쳤으며, 현재는 마을의 경로당으로 사용한다. 대청은 돌담에 둘러싸인 고옥들이 산재한 중심부에 위치해서 마을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모여드는 그런 장소이기도 하다. 규모는 앞면 5칸, 옆면 2칸이며, 기둥은 등근 다락집의 형태이다. 마루는 우물마루며, 천장은 서까래가 그대로 다 드러나지만 장식은 요린스럽지 않다. 건물의 모습이나 꾸민 수법은 일반 민가 건물에서는 그 예를 찾기가 힘든 짜임새 있는 건물이다
대율리 대청 안내문

대청의 정면에는 大栗洞中書堂(대율동중서당), 안쪽에는 老來軒(노래헌)이라고 쓰여진 편액이 걸려있다. 이 건물이 서당으로 사용됐음을 알 수 있다.

서까래가 드러나는 천정
대율리 대청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대율리 대청 후면 모습

대율리 대청 옆 경상북도 민속 문화재 제164호인 남천고택은 지금은 한옥펜션으로 사용되고 있어 예약을 한 숙박객들만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돌담길 산책과 함께 방문하여 전통 마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숙박객이 없는 시간이라도 내부 관람을 허용하면 더욱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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