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방방곡곡/경북경남

경주 형산강역사문화관광공원

by Yeongsik_Im 2024. 3. 11.
728x90
반응형

지금은 2002년 개통된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와 포항시 남구 연일읍 유강리를 잇는 포항의 관문 유강터널이 있지만 이전에는 형산강변을 따라 포항으로 진입했었고 그 길목에는 효자검문소가 있었다. 이제는 유강터널로 진입하기 전 '형산강문화역사관광공원'을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우회하면 형산강변에 조성되어 있는 형산강문화역사관광공원 지금은 한적한 그 길을 만날 수 있다.

형산강역사문화관광공원 사진 경주시

형산강 역사문화관광공원은 형산강의 역사문화, 환경생태, 산업 등 다양한 자원을 이용해 포항-경주 양 도시 간 협력프로젝트 발굴과 상생발전을 위해 2015년 2월에 상생협약을 체결하고 추진한 7개 형산강 프로젝트, 50여 개 사업 가운데 하나로써, 2015년부터 기본계획을 수립해 경주시 강동면 유금리(옛 부조장터) 일원 18,000㎡ 부지에 국비 등 사업비 28억 원을 들여 잔디광장과 상생마당, 쉼터, 초화원, 전망대, 산책로, 화장실 등이 조성됐다. 2020년 11월 20일 준공식이 개최됐다.

형산강 이야기길의 시작점으로 형산강이 발원하는 경주를 상장하는 장소인 관이금이마당은 경주행정구역 형태의 바닥상징물과 할머니 등에 업힌 유금이 상징물이 있고, 경주의 시목인 소나무와 시화인 개나리로 둘러싸여 있다.

할머니 등에 업힌 유금이 상징물

유금이들 유래
신라 김부대왕 때까지만 하더라도 경주의 절반에는 형산강이 흐르고 있었다. 그래서 큰비가 오면 경주가 자주 물에 잠겼다. 산(형제산)을 뚫어 물꼬를 트기 위한 공사를 하려고 해도, 물이 차 있어 쉽지 않았다. 김부대왕은 천년의 도읍지가 될 자리가 경주 터인데, 그런 장소로 못 만드는 것을 아쉬워하며, “내가 죽으면 용이 되어, 하늘로 승천할 적에 물꼬를 막고 있는 산을 쳐내어 물꼬를 트고 가겠다.”라고 하였다. 이윽고 김부대왕이 죽어 큰 구렁이(이무기)가 되어 경주 어느 들에 엎드려 있었다. 사람들이 용인지 모르고 그냥 지나칠 때에 유금이라는 영리한 아이가 구렁이를 보고, “아 용님 나오신다.” 라고 외쳤다. 구렁이는 꼬리로 왜구들의 소굴인 동해 열두 섬을 치고서 울릉도를 치려고 하자, 아이가 "울릉도는 용의 것이니, 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열두섬을 친 구렁이는 용이 되어, 형제산을 둘로 갈라놓고 승천하였다. 이후, 대왕이 용이 되어 승천하게 도와준 유금이라는 아이를 기려,용이 승천한 들을 유금이들이라 하고, 나누어진 두 산을 형산(兄山)과 제산(弟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문학사전 자료申〉

경주 행정구역 형태의 바닥상징물

728x90

강동면 유금리 형산강 유역은 조선시대 3대 보부상 장터로 황포돛배와 객점, 여관, 창고 등을 갖춰 전국 각지에서 상인들이 모여들어 활발한 교류가 펼쳐지는 정치·경제·사회·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부조장터 유적 조형물

이 지역은 조선말기까지 부조장이 개설되어 융성하였지만 예전의 영광은 간데가 없고 옛 부조장의 형세를 알아볼 수 있는 '좌상대 도접장 김이형 유공비'가 제산기슭에서 발견되었다. 1864년 당시 부조시장 관계의 유사와 도감을 비롯하여 8개의 임방(任房)에서 좌상대(左商隊)의 도접장인 김이형공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좌상대는 좌단이라고 하는 부상(負商)을, 우상대는 우단이라고 하는 보상(褓商)을 말한다. 1803년 혜상공국을 설치하여 보부상을 통합하였으며, 이후 1885년 상리국《商理局)으로 개칭했다가 1899년(광무3년)이를 상무사(商務社)에 이속시켜 부상을 좌사(左社), 보상을 우사(右社)로 개칭하였다,즉, 김이형은 부상의 여러 접장의 대표자로서 보부상을 지휘할 책임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었으며, 유공비에 적힌 비문에서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부조장터의 유적

좌상대도접장 김이형유공비

사진의 비석은 강동면민이 2024년 원조에 다시 세운 것이다. 중종원년(1864)에 세워진 비로 화강암에 48자의 한시가 음각되어 있는 김이형 유공비는 형산강 입구 ‘제산(弟山)’ 하단에 있다.

세찬 강바람 몰아치는 언덕에 찾는이 없는 공덕비 있었네풍삯되어 그 공 알아보기 힘드네 이제 그날의 공적을 기리고자 다시 만들어 이 곳에 세워 그 뜻 기리고자 한다네
갑진년원조 강동면민 일동

국당2교
해돋이역사기행자전거길 안내판
형산강 자전거길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