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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전주/전주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 오목대 梧木臺

by Yeongsik_Im 2022.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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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을 보낸 전주 풍남동에서 오목대는 두 사거리 정도로 가까웠다. 오목대 인근에서 살았던 친구들은 모두 국민학교 동창들이었기에 지금은 기린대로가 된 전라선 철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오목대가 있었고 우리에겐 놀이터와 같은 곳이었다. 전주 한옥마을이 관광상품화 된 후 많은 변화가 있지만 변하지 않은 곳이 있다면 아마도 오목대일 것이다.

오목대는 전주 풍남동 옆 동네인 교동에 위치하고 있는데 교동의 옛 이름은 자만동이었다. 조선 태조의 5대조인 목조대왕이 자연의 풍광을 즐기며 노닐던 곳으로 목조가 자라면서 호랑이와 싸웠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오목대는 1974년 9월 24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됐다.

오목대는 고려 말 유왕 6년(1380)이성계가 남원 운봉 황산에서 발호하던 왜구를 정벌하고 개경으로 돌아갈 때 연회를 베풀었고. 여기에서 유방이 불렀다는 대풍가를 읊으며 야심을 보인 곳이다. 이를 눈치 챈 정몽주는 인근의 남고산성 만경대에서 고려를 걱정하는 석벽제영(石壁題詠)이란 시를 읊었다고 한다.

그 후 광무4년(1900) 고종 황제가 친필로 쓴 태조고황 제주필유지(太祖高皇帝駐蹕遺址)비를 세웠다. 뒷면의 글은 고종이 짓고 김영목(金永穆)이 쓴 것이다.

오목대에서 사진 우측에 보이는 구름다리를 따라 내려가면 이목대(梨木臺)가 나오는데 이목대에도 고종의 친필로 '목조대왕 구거유지(穆祖大王舊居遺址)'라 새긴 비석과 비각이 있다.

원래는 오목대에서 기린봉으로 올라가는 동쪽 기슭에 잇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도로확장공사로 인해 기린대로 변으로 이전했다고 한다.

오목대에는 비각과 함께 누각이 세워져 있는데 누각에는 오목대 현판이 걸려 있다. 오목요대(梧木瑤臺)는 ‘오목대의 아름다운 모습’을 말한다. 요대(瑤臺)는아름다울 요(瑤), 물건을 얹는 대(臺)로 ‘옥으로 장식한 아름다운 누대’를 의미한다.

大風起兮雲飛揚

큰바람이 일고 구름은 높이 날아가네

威加海內兮歸故鄕

위풍을 해내에 떨치며 고향에 돌아왔네

安得猛士兮守四方

내 어찌 용맹한 인재를 얻어 사방을 지키지 않을소냐

대풍가

오목대비각

오목대에는 명필가인 석전 황욱(石田 黃旭, 1898~1992)이 해행(楷行)으로 쓴 현판과 여산 권갑석(如山 權甲石, 1924~2008)이 행서(行書)로 쓴 편액, 그리고 주련들이 남아있다.

오목대에서 자만마을로 가는 구름다리에서 촬영한 기린대로. 기린대로는 예전에는 전라선 철길이었다. 전주역은 지금의 시청 자리에 있었는데 1981년에 아중리로 이전했다. 군 입대후 첫 휴가때 한밤중에 전주역에서 내려서 전주역이 이전 했음을 알고 황당했던 기억이 새롭다.

사진 좌측에 보이는 구름다리를 건너면 자만벽화마을이다. 이어서 자만벽화마을을 소개한다.

 

 

카메라둘러메고 전주 자만벽화마을 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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