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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전주/전주한옥마을

조선시대 전라도를 총괄한 지방관서 전주 전라감영

by Yeongsik_Im 2022.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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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감영은 전라도(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도)를 총괄하는 지방통치관서로 조선왕조 500여년 내내 전주에 자리했다. 조선시대의 감영은 전국에 모두 8곳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와 전라감영 자리에 전라북도청이 들어섰고 2005년 전북도청이 신도심으로 이전하면서 호남의 으뜸도시로서 전주의 역사성을 회복하고, 원도심의 활성화를 위해 전라감영 복원 논의가 본격화 되었다. 오랜 논의 끝에, 2015년 구도청사 철거를 시작으로 감영 복원이 시작되었고, 2017년 11월 1일 감영 복ㄱ원 착공 후 2020년 10월에 1단계 사업을 완료하고 문을 열었다. 2022년 4월 22일 답사했다.

관람시간은

하절기3월 1일 ~ 10월 31일 ( 09:00~21:00 )

동절기11월 1일 ~ 익년 2월 28일 ( 09:00~18:00 ) 이며, 코로나 19 또는 기상조건에 따라 운영시간이 단축될 수 있다. 정기 해설투어는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4시, 오후 7시 4차례 실시된다.

 

전라감영 유튜브

전라감영 입구에는 이순신 장군의 글귀 ‘국가군저 개고호남 약무호남 시무국가’를 한자로 새긴 기념비가 설치되어 있다. 전라도를 관할한 전라감영지에 세우는 기념비는 임진왜란 국난 극복과정에서 보여준 절의(節義) 정신과 나라의 보고로서 전라도의 위상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라도의 가치와 중요성 및 전북인의 자존의식을 한층 드높이고 있다.

 

국가군저 개고호남 약무호남 시무국가
國家軍儲皆靠湖南 若無湖南是無國家

 

임진왜란 발발 이듬해인 1593년 이순신 장군은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국가 군량을 호남에 의지하였으니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는 뜻의 "국가군저개고호남(國家軍儲皆靠湖南)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라고 표현했다.

 

 

내삼문은 전라감영 선화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전라감영의 정문 포정루로 들어와 중삼문을 거쳐 내삼문을 지나면 전라감사의 집무처 선화당이다. 내삼문은 솟을삼문 형태로 어칸에서 협칸, 퇴칸으로 낮아지는 형태다. 1884년 11월 11일에 전주를 방문한 미국 임시 대리공사 George Clayton Foulk(1856-1893)는 '포정루에서 150피트 정도에 첫 번째 대문(중삼문으로 추정)과 직각으로 100피트 정도에 두 번째 대문(내삼문으로 추정)이 있다' 라고 기록하였다.

전라감영지

조선왕조의 역사를 담고 있는 전라감영은 감사의 집무실인 선화당 (宣化堂)을 비롯한 40여 채의 건물을 거느린 웅장한 규모였다. 현재는 동쪽부지인 선화당과 관풍각, 연신당, 내아와 행랑, 비장청 행랑, 내삼문 등 7개 건물이 복원된 상태이다.

가석과 폐석 嘉石 肺石

가석은 섬돌 아래 왼쪽(동편)에 설치하여 죄인들로 하여금 잘못을 뉘우치게 하는 표석이고, 폐석은 오른쪽(서편)에 설치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억울함을 하소연 하게 하는 신문고 같은 표석이다. 가석과 폐석은 감영의 사법적 기능을 보여주는 것으로,감사로 하여금 백성들을 덕으로 교학하여 깨우치게 하고 재판을 공정히 하여 억울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법을 다루는 형조의 섬돌 아래에도 가석과 폐석이 있다 . 『주례(周禮)』에 따르면, 가석은 아름다운 무늬가 있는 돌로 잘못을 저지른 자들이 이를 보고 뉘우치고,폐석은 붉은 돌로 의지할 데 없는 사람이 이 돌 옆에 서 있으면 억울한 일을 해결해 준다고 하였다.
전라감영 가석과 폐석 안내문

선화당

선화당은 전라감사의 집무처이다. 선화당이라는 당호는 ‘왕명을 받들어 교화를 펼친다’는 ‘승류선화(承流宣化)’에서 나온 말이다.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소실되어 그 이듬해 1598년 전라감사 황신(黃愼)이 중건하였으며, 1771년에 전라감사 윤동승(尹東昇)이 개건하였다.이후 1792년(정조 16)에 화재로 소실되어 전라감사 정민시(鄭民始)가 다시 중건하였다. 선화당은 광복후까지도 남아 있었으나 한국전쟁 중 1951년 경찰청 무기고로 쓰이던 도청 문서고에서 로케트탄이 폭발하여 도청 본관과 함께 소실되었다. 선화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로 약 78평에 달하는 큰 건물이며, 전주부성내에서 객사 다음으로 컸다.
전라감영 선화당 안내문

선화당 편액
선화당 전라감영 전러감사 집무실
선화당 오른쪽 방에는 전주역사박물관에서 고증한 전라감영의 옛 모습이 디지털 영상과 배우의 음성으로 복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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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당 마루
선화당은 정면 7칸 측면 4칸 규모이다.
내아 행랑
내아

내아는 전라감사 가족들이 거처하는 안채로 선화당 북쪽에 위치하였다. 19세기 완산부지도에 내아가 'ㄷ'자형 건물로 그려져 있다. 발굴조사에서 3동의 건물이 중첩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엇다. 3차례 개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아 측면
내아와 행랑
보호수 회화나무

회화나무는 흔히 ‘선비나무’, ‘학자수’라고 부른다. 나무 가지가 선비의 기상처럼 거침없이 자유롭게 뻗어나기 때문이다. 이 회화나무는 수명이 250 여년이 된 나무로 현존하는 전라감영의 유일한 흔적이다.

구 도청사 건물 철거 전에 회화나무가 의회동 건물에 둘러싸여 있었다.

연신당

연신당은 전라감사의 처소이다. 1688년(숙종 14)에 전라감사 이유(李濡)가 창건하였다. 연신당이라는 이름은 『논어』「술이편」에 ‘공자께서 집에서 쉬고 계실 때는, 마음이 온화하고 너그럽고 즐거우신 듯 보였다(子之燕居 申申如也 夭夭如也)’에서 나온 것이다. 감사가 편히 쉬는 처소임을 의미한다. 경상감영은 징청각(澄淸閣)이라고 하였다.
전라감영 연신당 안내문

선정비군

선정비란 선정을 베푼 관리들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인데 조선말에는 선정비들이 으례 세워졌고 억지로 세워지기도 하였다. 조선말에는 전라감영 건너편에 선정비가 세워져 있다가 다가공원쪽으로 옮겨졌으나 2020년 감영을 복원하면서 감영 경내로 이전하였다. 관팔사 18기, 판관 5기, 중영장, 별장, 영의정, 암행어사 각 1기로 총 27기의 선정비가 있다.

뒤쪽에서 촬영한 관풍각과 선화당
관풍각

관풍각은 선화당에 이어 감사가 정무를 처리하는 제2의 정청이며, 감사가 쉬기도 하고 연회의 장소로도 사용했다. 관풍각 이라는 이름은 감사의 직무인 ‘풍속과 민정을 살핀다’는 ‘관풍찰속(觀風察俗)’에서 유래하였다.

선화당과 관풍각 당호는 감사의 직무를 상징적이고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우물

1928년 및 1937년 일제강점기 도청사 도면에 표기된 우물로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우물의 평면은 원형이며, 20~30cm 내외의 석재로 쌓아올렸다. 우물의 규모는 직경 150cm 내외로 확인되었다.

비장청 터

비장청은 전라감사의 사적 보좌관인 비장들의 집무소이다. 비장은 그 업무상 감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비장청은 감사의 영역과 가깝게 배치되었다. 완산부지도에 비장청은 감영의 내아 평면과 유사한 'ㄷ'자형으로 그려져 있다. 발굴조사 결과 비장청과 관련된 적심시설이 남아 있지 않아 복원하지 않고 터만 표기하였다.

구 전라북도청사 흔적

이곳으 조선시대 전라감영과 1921년에 신축된 도청사 1952년에 신축되어 2005년 신도심으로 이전할 때까지 전라북도청이 자리했던 공간이다. 고려시대 전주목 객사 명문 와편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치소(治所 관아가 있는 곳)도 여기에 자리햇을 개연성이 크다. 여기에서 통일신라때 건물터와 유물들도 발견되었다. 전라감영지는 통일신라에서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치소로서의 역사가 중첩된 역사성 깊은 곳이다.

전라감영 모형도
현재 서쪽부지는 추가 복원을 위해 건물터를 구분하여 안내문을 설치해 두었다.

전라감영이 아직 완전한 복원이 된 것은 아니다. 지난해 전라감영의 서편부지를 포함한 완전복원과 성곽 일부가 발견된 전주부성의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갈 전라감영 완전복원·전주부성 역사 재창조위원회가 출범했다.

 

문제는 주차장이다. 4월 22일 방문시 서쪽부지를 임시주차장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알고 주차를 하려 했으나 할 수 없어서 웨딩거리와 객사쪽으로 한바퀴를 돌았다. 주변에는 완산경찰서 주차장말고는 주차할 공간이 별로 없는 곳으로 안심하고 관람을 하려면 인근의 유료주차장을 이용할 수 밖에 없다.

전주시민이라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전주여행을 오신 분들이라면 비교적 저렴한 남부시장 천변주차장을 이용하여 남부시장과 풍남문, 그리고 풍패지관까지 구경하며 좀 걷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 일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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