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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경북경남

가을꽃 향연 펼쳐지는 천년고찰 경주 함월산 기림사

by Yeongsik_Im 2022.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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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 11월 4일 포항 오어사에 들린 김에 돌아오는 길에 옛 도로인 영월로를 넘어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함월산(含月山)에 있는 삼국시대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창건한 천년고찰 경주 기림사를 방문했다.

함월산(含月山) 기림사(祇林寺)는 천축국 天竺國(인도)에서 온 광유성인(光有聖入)이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 라고 불렀다가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원효대사가 사찰을 크게 확장하면서 현재의 이름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기림사 일주문
기림사 입장료 및 주차장 이용안내

기림사는 삼세여래를 모신 대적광전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약사봉과 사천왕, 사리왕탱을 모신 약사전, 서쪽에는 관음전, 정광불의 사지각인 삼천불전이 있고 남쪽으로 오백나한전, 산신각, 무향수전, 진남루가 있으며 정면에 삼층석탑이 있는 1탑 1금당형의 가람배치를 이루고 있다.

기림사 경내에서는 10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에 '기림사 가을꽃향연 불우이웃돕기 대바자회'가 열리고 있다.

천왕문

사천왕문의 동방지국천왕은 오른손에 검을 들었고, 서방광목천왕은 오른손에 삼지창, 왼손에 보탑을 들었고, 남방증장천왕은 왼손에 여의주를, 북방다문천왕은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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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을 들어서면 우측에 종무소가 있고 정면으로 진남루가 보인다. 진남루 뒤 좌측으로 응진전과 옆에 대적광전과 약사전이 배치되어 있고 그 뒤로 응향각이 있다.

기림사 종무소
진남루

진남루는 남방을 진압한다는 뜻으로 여기서 남방은 일본을 가리킨다고 한다.임진왜란 당시 기림사는 전략요충지로서 경주지역 의병과 승병 활동의 중심사원이었으며 이 지역 다른 사원과 달리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고 한다. 경주부 관아에 보관되어 있던 [영부안선생]이나 [호장안]등 수많은 문헌들은 당시 호장 최락에 의해 기림사로 옮겨져 잘 보관 된 결과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이때 진남루는 승군의 지휘소로 사용되엇던 건물이다.

진남루의 건물형태는 익공계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상부 구조 수법이 돋보이는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
진남루 주련

기림사의 모든 전각 한쪽에는 주련에 대한 설명이 적힌 나무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삼층석탑

대적광전과 진남루 사이 서쪽에 오백나한상을 모신 응진전이 있고 그 앞에 높이 3m 정도의 아담한 삼층석탑이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 제205호인 이 삼층석탑은 감은사 탑과 같은 돌인 안산암으로 만들었는데, 2중의 기단위에 3층으로 몸체 돌과 지붕돌을 깔았고 그 위에 노반, 복발, 양화까지 남아 있다.

아랫 기단은 낮은데, 한면에 3개씩의 기둥모양이 새갸져 있고, 위 기단은 높은데 각 면마다 기둥 셋이 새겨져 있다. 몸체 돌에는 층마다 모서리 기둥을 새겼는데, 아래는 굵게, 위는 좁게 나타내는 엔타시스(배흘림)양식이다. 처마 끝은 4단으로 되어 있다. 기단의 기둥수, 처마 받침의 단수가 줄어들어 통일 신라의 일반형이면서 시대 말기것으로 보인다.

석탑 동쪽의 보리수 밑에는 목탑터가 남아 있다. 언젠가 목탑이 소실되고 안 뒤 재건하지 못하고 대신 자그마한 석탑을 새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림사 누리집 참고>

응진전

이 응진전은 500분의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원래 16분의 나한을 모시는 전각을 응진전이라 하고,500분의 나한을 모시는 전각을 나한전이라 하지만,이곳에는 500분의 나한을 모시고 있다.건물은 정면 5칸 규모에 맞배지붕으로 지은 조선 후기의 건축물이다. 다포 양식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처마의 무게를 받치는 공포를 설치하였다. 공포는 비교적 단순한 모습이지만,대들보와 마룻보 위에서 그 위의 마룻보를 받치는 대공은 화려한 모습이다. 건물 내부는 천장이 양쪽으로 경사지도록 빗반자(천장을 경사지게 처리한 마감)를 설치하여 서까래가 보이지 않게 하였다.
기림사 응진전 안내문

약사전

이 전각은 약사여래를 모신 불전으로, 기림사의 중심 건물인 대적광전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중건기에 효종 5년(1654)에 약사전을 다시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건물은 앞면 3칸, 옆면 1칸의 작은 규모이며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머리의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기림사의 다른 불전들과 마찬가지로 기단이 매우 낮고, 옆면에 문을 내지 않았다.건물 안에는 약사여래와 일광보살, 월광보살의 삼존불을 봉안하였다. 2009년에 삼존불에 금칠을 다시 하였는데 이때 채색의 흔적이 확인되었고, 불상 안에서 후령통(불상이나 불화 안에 보석이나 경전 등의 물건을 넣기 위해 만든 통)과 함께 1679년에 쓴 중수기 등이 나왔다.
기림사 약사전 안내문

기림사 대적광전 보물 제833호

기림사 대적광전은 지혜의 빛으로 세상을 비춘다는 비로자나불 을 모시는 법당이다. 1997년 해체공사 때 발견한 묵서로 이 법당의 유래를 알게 되었다. 즉 이 법당은 임진왜란 후 인조 7년(1629)에 크게 고쳐지었고, 영조 31년(1755)과 정조 9년(1785)에 대대적으로 수리를 했다고 한다. 이때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을 모시면서 대웅전을 대적광전 으로 고쳐 부른 듯하다.법당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이지만 정면의 칸 사이가 넓어 좌우가 긴 건물이다. 정면의 문은 꽃무늬를 새긴 꽃살창인데 가운데 3칸에는 4짝씩, 양쪽 끝에는 3짝씩의 문이 있다. 측면에는 중앙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두 기둥을 높게 세우고 그 위로 맞배지붕을 얹었다.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올린 다포 양식이다.건물의 구조는 단순하지만 꽃살창이나 내부 천장 아래의 공포를 작은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모습이 독특하다. 여러 차례 수리를 거치면서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기림사 대적광전 안내문

기림사 대적광전 편액
기림사 대적광전 주련
관음전
삼천불전
삼천불전 주련
삼청각과 명부전
서방 화정수

서방 화정수는 화정당 옆에 지금도 흐르고 잇는 샘으로, 음용하면 페부의 기운을 다스려 마음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해서 화정수(和靜水)라고 한다고 한다.

기림사의 오방에는 다섯가지 맑은 샘이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동쪽은 옛 동계암 자리로, 까마귀가 바위를 쪼아대지 솟은 오탁수, 남쪽은 천왕문 앞 노송 아래로, 마시면 눈이 밝아 진다는 명안수, 서쪽은 화정당 앞에 지금도 흐르고 있는, 마음을 고요하고 평화롭게 한다는 화정수, 북쪽은 북암(감로남) 암벽 아래로, 하늘의 밝고도 단 이슬과 같다는 감로수, 중앙은 응진전 앞 석탑 자리이니,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솟아나게 만든다는 장군수이다.

각기 불교 수행의 이치를 상징하기도 하는 오정수는 안타깝게도 지금은 위 사진에 설명한 화정수만 끊이지 않고 도량에 넘져 흐르고 있다고 한다.

범종루
기림사 범종루 목어
범종루에서 내려다 본 진남루와 응진전
성보박물관

성보박물관에는 보물 제959호 비로자나불, 목비 8점(4점은 문화재자료 제301호), 석조, 토제치미(문화재자료 제301호), 금구 1점(문화재자료 제301호), 명부시왕 탱화, 김재사자 직부사자 탱화, 고승 영정, 용왕탱, 제석탱 등 많은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매월당 영당

매월당 영당은 생육신의 한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선생(1435-1493)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본래의 영당은 현종 11년(1670) 경주부사 민주면이 선생의 뜻을 추모하기 위해 선생이 은거하였던 용장사 경내에 오산사를 지었으나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 고종 15년(1878) 이를 애석하게 여긴 경주유림이 경주부윤 민창식에게 청원하여 함월산 기림사 경내에 다시 지었으나 그 후 퇴락되어 1998년 경주시에세 현재의 위치에 중건하였으며 매년 음력 2월 중정에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가을 꽃 향기와 함께 기림사의 가을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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