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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유허비 포항시 남구 오천읍

by Yeongsik_Im 2022.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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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 남구 오천읍 지역은 포은 정몽주와 인연이 매우 깊은 곳이다. 포은의 본관이 오천인데 태어난 곳은 외가인 영천 임고로 알려져 있으나 혼례를 하면 어느 정도 처가에 거주하다 나중에 남편 집에 돌아가는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에 따라 포은도 외가 영천에서 태어나 일정 기간 그곳에 자랐지만 자신의 부친과 조상들이 대대로 살았던 본가 오천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을 보내고 다시 부모를 따라 영천으로 간 이야기가 오천 지역에 전해져 내려 오고 있다.

오천읍에는 포은과 관련해서 정몽주 유허비, 오천서원, 생가터, 상마암(승마암) 등 유적들이 남아 있는데 12월 29일 포항시 남구 오천읍 구정리에 있는 정몽주유허비를 찾았으나 잠겨 있었다.

유허비각이 있는 구정리는 영일군사 마을편에 옛날에 정승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원래 이곳에는 오천서원과 유허비각이 나란히 있었으나 오천서원은 원동으로 이건되었고 지금은 비각만 남아 있다.

정몽주 선생은 영일정씨 시조인 추밀원 지주사 형양공 습명선생의 11세손이며, 고려말 충숙왕 복위 6년(1337) 12월에 탄생하셨고, 자는 달가, 호는 포은, 시호는 문충이다.

유허각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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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유허비각은 고려시대의 충신인 포은 정몽주 선생의 충절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고자 이 지방 유생들이 뜻으 모아 선생의 생장지이고 고택의 유허지인 이 곳에 인조 12년(1634)에 건립하였다.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정몽주유허비각은 현종 6년(1665). 숙종 25년(1699), 순조 31년(1831), 건국 7년(1954), 건국 40년(1987)등 5차례에 걸쳐 중건 · 개수되었다.

유허비 비석의 높이는 1.52m, 폭 0.5m이다.

1980년대 유허비각을 중수할 당시 땅에 묻혀 있던 정몽주유허비가 발견되었는데 발견된 유허비는 2015년 오천읍 원리에 있는 오천서원 유허비각으로 이건 되었다.

유허비각 앞 우측에는 단심가와 김해 연자루를 찾아 지은 시가 새겨진 비석이 세워져 있다.

 

단심가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넔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잇으랴

 

燕子雙飛日幾回 연자쌍비일기회

연자루 앞에는 제비 돌아오건만

江南行客逐春來 강남행객축춘래

임자는 한번 가서 다시 오지않누나

東風落盡梅花樹 동풍낙진매화수

그때에 순수 심은 매화 나무야

唯見山茶帶雨開 유견산다대우개

그동안 보바람에 몇번 폈느냐

정몽주유허비각

포항시 오천읍에서는 오천이 포은 정몽주 선생의 어린 시절 흔적이 살아 숨쉬는 유서 깊은 충절의 고장으로 홍보하고 있고 포은 선생의 충절과 위업·정신을 지역 문화의 정체성으로서 널리 발전 계승하기 위하여 2007년부터 매년 오천청년회와 더불어 포은문화축제를 개최하여 포은 정몽주 선생의 고향이 포항 오천임을 널리 알리고 지역민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 하고 있다. 2020년부터 포은문화축제는 코로나 19로 인해 아쉽게도 개최하지 못했다.

포은 정몽주선생 생가에서 걸어서 약 10여분 거리인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1044-5번지에도 1992년 7월18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2호로 지정된 포은 정몽주 유허비가 있다.

 

 

 

영천 포은 정몽주생가 · 정몽주 유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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