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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충북충남

온양의 옛 이름 온주 동헌 · 온주아문

by Yeongsik_Im 2023.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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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온양향교를 방문한 후 200m 거리에 있는 온주아문 및 동헌으로 향했다.

온양향교와 함께 아산시 읍내동에 있는 온주아문 및 동헌은 조선시대 온양군의 치소였음을 알 수 있다.

온천으로 유명했던 온양은 지금은 아산시로 통합되었지만 온양온천과 현충사 등으로 예전에는 신혼여행 명소이기도 했고 국민학생들도 알고 있었던 유명한 지역이었다. 필자도 국민학교 5학년 때 이 곳으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던 기억이 있다.

온주아문 및 동헌은 온양군 관아 건물로 온주아문과 동헌 2동의 건물만 현존하고 있으며, 1993년에 수리 및 복원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온주아문 및 동헌은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6호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온주아문

온주아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아문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층의 문루 건물이다. 아래층은 삼문 형태의 통로로, 위층은 누마루로 이용하도록 하였다. 1.5m 높이의 화강석 사각 장초석을 세우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설치하였으며, 2층 누각의 4면에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둘렀다. 공포는 전형적인 무출목(無出目) 익공(翼工) 계통으로 구성하였으며, 기둥 사이에는 운공[구름 모양의 받침대]을 끼운 장화반(長花盤)을 가운데 3구, 양쪽에 2구씩 배치하여 주심도리(柱心道里) 장여[도리 밑에서 도리를 받치고 있는 길고 모진 나무]를 받치고 있다. 마룻보[宗樑] 위에는 파련대공(波蓮臺工)이 있으며, 합각(合閣) 밑에는 충량(衝樑)을 걸치고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화려한 단청이 이루어졌으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디지털아산문화재단

아문에는 溫州衙門(온주아문) 이라는 현판이 붙어 있는데 신라 문무왕 3년(663)에 군이름을 온주라 하였으므로 그대로 이름을 따서 붙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문은 낮은 기단 위에 사각형의 기초석을 갖춘 높이 1.5m의 주형(柱形) 초석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에 배열하여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설치하였다. 위층의 누마루는 계자난간을 돌렸고 공포는 2익공 계통의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외출목(外出目)은 없으며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온주아문 및 동헌 [溫州衙門 및 東軒]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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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

온주아문을 들어서면 50m 쯤 떨어진 곳에 동헌이 자리잡고 있다. 동헌 10칸, 아사 23칸, 객사 37칸, 향청 12칸 등 이름과 칸수가 조선 영조때 편찬한 여지도서與地圖書 온양군 공해조에 기록되어 있는데 여러차례 변형되고 지금은 아문과 동헌만 남아 있는 것이다.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평면이며 잘 다듬은 화강석 장대석을 한 벌 쌓아 기단을 마련한 뒤 덤벙주초[자연석을 가공하지 않고 주춧돌로 사용한 돌]를 두고 그 위에 사각의 기둥을 세웠다. 장대석 일부는 다른 건물의 것을 돌려쓴 것도 있다. 공포는 무출목 초익공이며, 보머리와 익공의 양편에는 초각을 하였고 창방(昌枋)으로 구성된 기둥 사이에는 다섯 개의 소루를 놓아 주심도리를 받치고 있다. 우물천장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오른쪽 5칸은 대청이고 모서리 한 칸은 방을 배치하였다. 맨 왼쪽은 두 칸 모두 방을 배치하였고, 그 오른쪽은 뒤에 두 칸 방을 배치하고 전면은 두 칸 마루를 설치하였다. 디지털아산문화대전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동헌 내부에 걸려 있는 온주동헌 현판에는 아래와 같이 쓰여져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때 건조물로 온주동헌이라 부른다.

온주라고 한것은 신라 문무왕때 군 명칭을 운주라고 한데서 유래되었으며 1871년(고종7년) 대원군 섭정시 중수되어 관아로 상요되었고 시 개청이후 동사무소 등으로 사용되어 오다 1990년 9월 27일 충청남도 지방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었으나 건축물의 원형이 심히 퇴락되어 온양시에서 예산 1억7천만원을 들여 1993년 4월 복원공사를 착수하여 1994년 5월 원형대로 복원한 것이다.

동헌의 오른쪽 3칸은 대청이고 모서리 한 칸은 방을 배치하였다. 왼쪽 끝 한 칸은 모두 방으로 배치하였고, 그 옆 두 칸은 툇마루와 방을 배치하고 전면 두 칸 누마루를 설치하였다.

읍내동 온주아문 비석군 흩어져 있던 공덕비, 선정비, 송덕비, 영세불망비들을 2008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조선시대 기준으로 온양군, 아산현, 신창현 등 3개 군현이 있었던 충청남도 아산시에는 아쉽게도 관아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아산향교, 온양향교, 신창향교는 모두 남아 있다.

신창현 관아 건물은 모두 없어졌고 아산향교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아산현의 문루였던 여민루와 책실 건물, 그리고 온주아문 및 동헌이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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