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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충북충남

보령성곽 · 보령관아문 충남 보령여행

by Yeongsik_Im 2022.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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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을 여행하며 먼저 남포면에 있는 남포읍성과 남포관아문, 그리고 남포향교를 돌아보고 이어 보령성곽과 보령관아문으로 이동했다. 남포읍성에서 보령성곽까지는 17km 정도로 승용차로 약 10분 조금 더 걸렸다. 보령관아문 우측에 있는 공용주차장에 주차후 해산루와 보령읍성의 남아있는 성곽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보령관아문이 있는 보령리는 백제때는 신촌현, 통일신라때는 신읍, 고려때는 보령현, 조선시대(1985)에는 보령군이라 했고 서기 1910년 보령,남포,오천의 3개군을 통합하여 보령군으로 하고 이곳에 군청을 두면서 읍내리라고 부르다가 1914년 군청이 대천으로 옮겨가자 주포면사무소 소재지가 되면서 신성리라 했고 1962년 1-월부터 보령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보령리는 예부터 지역 행정의 중심지로 보령성을 비롯하여 유적들이 산재해 있다.

보령관아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0호(1976.1.8)

보령관아문은 조선시대에 쌓아 보령현의 치소약할을 하였던 보령성곽의 남문으로 세종 13년(1431)에 현감 박효성이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

해산루 편액

해산루 (海山樓) 편액은 보령출신으로 중종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의 글씨하고 전해지고 있다. 고령현은 고려시대부터 붙여진 이름이며, 조선시대에는 인근 오천면에 있었던 충청도 수군절도사영과의 통치관계에 따라 보령부로 승격하기도 하였다.

보령관아문은 장초석위에 기둥을 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남포관아문과 같이 조선시대에 관아문형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해산루의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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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관아문을 들어서면 바로 주포초등학교와 보령중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성곽에 걸린 재미있는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임금님도 초등학교 앞에서는 30km로 줄입니다."

어린이보호구역에서는 반드시 서행합시다!

1층은 양편의 기둥을 성벽 위에 걸쳐 세워 성곽의 일반 문루처럼 가운데 1칸만 통행하도록 되어있다. 기둥과 같이 긴 주춧돌 위에 원기둥을 세웠으며, 2층은 누각을 설치하고 간단한 난간을 사방에 둘렀다.

보령관아문 1층 주춧돌과 기둥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46호로 1984년 5월 17일 지정된 보령성곽 (保寧城郭)은 고려말에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여 쌓은 봉당성이 있던 곳에서 동쪽으로 약 400m 떨어진 위치에 1430년(세종 12년)에 이미 있던 성을 보강하여 쌓은 것이다.

성돌에 천안,단양,제천 등의 충청도의 군현 명칭이 새겨져 있는 것으로 보아 축성 당시 여러 지역의 인력이 동원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성의 규모는 둘레 630여m, 높이 3.5m이고, 성에는 적대(敵臺 성벽에 달라붙은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던 곳) 8개소, 남북동문 3개소, 우물 3개소 등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한말 의병전쟁 등을 거치면서 파손되고 남문이 해산루 옆 성벽 약 70여m와 북쪽 성벽 약 360m 만이 보존되고 있다.

적대(敵臺) 성벽에 달라붙은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던 곳

이제 보령여행의 다음 목적지인 보령향교로 간다. 옛 보령현의 국립교육기관이었던 보령향교는 보령성곽에서 약 900여미터 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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