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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최부자댁 ·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상징 ‘경주 최부자’

by Yeongsik_Im 202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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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씨 최부자의 종가로 월성을 끼고 흐르는 남천 옆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고 있는 경주최부자댁은 1971년 국가민속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됐다. 원래 명칭은 '경주 교동 최씨 고택'이었으나 2017년 2월 28일 '경주 최부자댁'으로문화재 지정명칭이 변경되었다. 관람시간은 09:30-17:30 이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매월 마지막주 월요일, 설날 및 추석 당일 정기 휴관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최부자의 집안은 도덕적 의무와 관용을 몸소 실천해 온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12대 동안 만석지기 재산을 지켰고 학문에도 힘을 써 9대에 걸쳐 진사를 배출하였다.

권력에의 탐닉을 막기 위해 진사 이상의 벼슬은 하지 말라는 가훈이 내려왔는데 일명 ‘최부자 육훈’으로 진사 이상의 벼슬 금지를 비롯해, 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 것, 과객을 후하게 대접할 것, 흉년에 재산을 늘리지 말 것,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할 것 등의 가훈을 지키며 올바른 부자의 정도를 걸었다고 한다.

최부자댁이 있는 교동(校洞)은 신라때 국학이라는 학교시설이 있었던 마을이며, 지금의 경주향교가 그 터라고 알려진 유서 깊은 마을이다. 

 

경주 최부자댁 (慶州 崔富者宅) 가옥은 조선 중기 무렵 최언경(崔彦璥)대에 최씨 집안이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에서 교동으로 이주하여 정착한 1779년 경에 건립되었다. 원래는 99칸이었다고 전해지며 문간채 • 사랑채 • 안채 • 사당 • 곳간 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대석 기단을 갖춘 사랑채

안채는 ‘ㅁ’ 자 모양이고 대문채는 ‘一’ 자 모양 이다. 사당을 안채의 동쪽에 배치하지 않고 서쪽에 배치한 점, 기둥을 낮게 만들어 집의 높이를 낮춘 점, 집터를 낮게 닦은 점 등은 성현을 모시는 경주향교에 대한 배려로 최부자댁의 건축적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사랑채에 걸려있는 현판들

사랑채 편액의 鈍次(둔차)는 '제주가 둔하다'는 뜻으로, 최준 공의 부친인 최연식 공의 호다. '둔한 2등'이라 직역되며 1등만 강조하는 현대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문구다.

용암고택 편액

龍庵古宅(용암고택)은 용의 정기가 스며드는 집이라는 뜻으로 최진립 장군(12대 최부자 중 1대)의 후손인 최기영(12대 최부자 중 8대)의 호를 따서 지은 집이다.

대우헌 편엑

大愚軒(대우헌) 은 크게 어리석다는 뜻으로 최준 공의 조부인 최만희 공의 아호로 이 말은 사리사욕을 다지지 않는 공적인 헌신을 강조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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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의 아름다운 창살
안채
고방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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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최준(崔浚)선생 생가
문파(次敢) 최준(崔浚, 1884 〜 1970) 선생은 이른바 9대 진사 12대 만석의 마지막 부자로 이곳 교촌에외 태어났다. 선생은 영남의 대지주(大地主)로서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回復團)과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에 군자금을 제공하는 등 독립운동을 지원하였으며, 특히 대한광복회에서 재무를 맡아 총사령관 박상진(朴尙鎭)의사와 더불어 항일투쟁을 전개하다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심한 옥고를 치렀다.
선생은 또 이곳 사랑채에서 백산(白山) 안희제(安照濟,1885〜1943) 선생과 함께 백산상회(白山商會) 설립을 결의하고 대표에 취임하여 비밀리에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주석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에게 
거액의 군자금을 보내는 등 독립운동사에 빛나는 공적을 남겼다.
이 밖에 선생은 민족혼을 일깨우기 위해 문화사업에도 관심을 기울여, 1920년에 경주고적보존회를 설립하고 1932년 정인보선생 등과 동경통지를 편찬하는 등, 신라문화의 유산을 지키고 널리 알리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해방 직후 선생은 나라를 이끌어 나갈 인재를 길러야 한다며 모든 재산을 기증하여 계림대학과 대구대학을 설립하니, 곧 오늘의 영남대학교 전신이다.
정부는 선생의 공적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제 애국애족의 일념으로 일생을 항일운동에 헌신한 선생의 숭고한 정신과 실천적 삶을 여기 기록하고,길이 후세의 귀감으로 삼고자 한다.
독립유공자 최준(崔浚)선생 생가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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