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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경북경남

방짜유기의 최고봉 함양 꽃뿌리 함양징터

by Yeongsik_Im 2023.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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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대전간 고속도로 서상IC를 빠져 나와 서하면으로 가다 보면 서상면과 서하면의 경계지점인 일명 꽃뿌리 도로 옆에는 비석 하나가 쓸쓸히 서 있다. 지나다 얼핏 보고 '함양장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번 출장길에 차를 세워놓고 보니 '함양징터'라고 새겨져 있다. 2001년 8월 건립된 '함양징터유적비'이다.

함양징터유적비가 세워져 있는 서하면 지역은 주변 서상면과 안의면과 더불어 한때 15곳이 넘는 방짜유기 공방이 명맥을 이어왔던 곳이다. 특히 서하면과 서상면의 경계지점인 일명 '꽃뿌리'는 방짜유기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징을 만들던 함양징터가 있었던 곳이다.

방짜’는 ‘품질이 좋은 놋쇠를 녹여 두드려 만들었다’는 뜻으로 유기그릇을 두드려서 만들고 그릇 밑에 방(方)자라는 글을 새겨서 생긴 말이다.

함양징터유적비

함양징터 기념비의 아랫 기단 부분에는 징의 모습이 비석을 받치고 있으며 양면에는 명장 오덕수 약력과 건립추진위원회 명단이 새겨져 있다.

여기 꽃뿌리

함양 징의 장엄한 소리가 들린다

명장 오덕수의

그 정열 그 재능이 여기에 스며있다

피땀어린 명인의 발자취

꽃뿌리 일구더니

이 나라 제일가는 함양 징 꽃 피웠네

다시한번 들어보라 들어보라

그 징소리 그 여음

여기에서 영원히

서기 2001년 8월 글 박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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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오덕수 약력

함양 징을 이여기할려면 고 오덕수 선생을 빼놓을 수 없다.

함양 징 명장 오덕수씨는 광복 이후 1947년 서상면과 서하면의 경계인 꽃뿌리에 징점(鉦店)을 운영하면서 방짜 징과 유기를 만들었으며, 그 문하에 있던 많은 제자가 전국으로 나가면서 알려지기 시작됐고, 쇳물을 녹여 두드려 징을 만들면서 전국으로 알려졌다.

함양의 방짜 징은 문화유산 복원 측면에서 그 맥을 이어가기 위해 명장 오덕수 씨의 문하생이던 함양군 서상면 출생 이용구(76) 씨가 거창으로 이주해 징점을 열고 방짜 징의 명맥을 이어갔고, 1993년 그 전통과 제작기능 보유가 인정되어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14호로 지정됐다.

함양징터유적비 건립추진위원회
함양징터 유적비 건립 협찬자
함양방짜유기촌

함양징터유적비 맞은편에는 함양징과 함양유기의 명성을 되살리고 함양 전통 방짜유기의 맥을 잇는 함양방짜유기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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