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의 향교/충청북도

조선시대 영동지역 관학기관 영동향교 永同鄕校

by Yeongsik_Im 2021. 5. 20.
728x90
반응형

조선시대 영동지역 관학기관 영동향교 永同鄕校

2021년 5월 19일

영동향교 전경

영동향교는 조선 선조(1567〜1608) 때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며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영동지방에 세운 관학기관이다. 임진왜란(1592)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현종 1년(1660) 옛 읍성 안에 복원하였다. 숙종 2년(1676)에 구교동으로 옮겼다가 영조 30년1?54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앞에 두고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뒤에 배치한 전학후묘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신 대성전과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이 남아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노비 • 책 등을 지급 받아 운영하였으나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다.

영동향교 홍살문 우측에 하마비가 있다.
영동향교 외삼문
영동향교 명륜당
영동향교 명륜당앞의 은행나무 암나무이다.

영동향교의 명륜당 앞에 은행나무는 영동군수가 1982년 11월 11일 지정한 영동3호 보호수이다. 지정 당시 수령은 200년이었으며 수고는 35미터, 나무둘레는 3.5미터이고 흉고직경은 1.6미터이다. 암나무로 열매는 춘추로 선전제로 사용된다.

영동향교 유림회관

대성전으로 들어가는 협문이 잠겨있어 유림회관에 들려보니 유림회관 역시 부처님오신날 휴일이라서인지 잠겨있었습니다. 평상시 향교는 문을 닫아 놓은 곳들이 많았으나 최근에는 향교서원활성화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어 많은 향교들이 개방을 하고 있는 추세입니다만 코로나19로 인해 개방을 하지 않고 있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영동향교 노후사
영동향교 전사청
영동향교 명룬당
담넘어로 바라본 영동향교 내삼문과 대성전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