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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한국의 서원 광주 지산재 芝山齋

by Yeongsik_Im 2023. 1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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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재는 신라말의 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857~?)을 봉향하기 위하여 1737년(영조13)에 양과동에 영당을 건립하고, 1846년(현종12)에 세워 최치원의 신주를 모신 지산사의 강당이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헐려 없어졌던 것을 1922년에 다시 세웠다.

지산재 표지석

처음에는 최치원을 중심으로 최운한(崔雲韓, 1444~1499) · 최형한(崔亨韓, 1446~1504) · 정오도(鄭吾道, 1641~1732) 네 분을 모셨으나, 고쳐 세우면서 최치원만을 모시게 되었다.

지산재 안내문
지산재 외삼문
외삼문 성지문 편액 丁丑仲春 박경래가 썼다.
지산재

경내에는 외삼문과 강당인 지산재, 동재와 서재, 내삼문과 영당이 있는데, 그 중 지산재가 1979년 8월 3일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0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산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중앙 2칸은 대청마루바닥이고, 좌우 양칸은 온돌방을 놓았다.

지산재 편액

지산재와 영당의 편액(扁額) 글씨는 서예의 대가였던 고당 김규태(顧堂 金奎泰 1902~1966)가 썼다.

지산재 앞 좌우로는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의 맞배지붕인 동재와 서재가 마주보고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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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동재
내삼문
지산영당
서재 왼쪽 협문 밖 빈터에는 1985년에 세운 지산사유허비가 있다.
지산사유허비
지산재는 서원과 어우러진 배롱나무꽃이  아름다운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광주 지역 문중에서 시조를 어떻게 제향했는지 살펴볼 수 있는 지산재는 서원 철폐령 이후 다시 세워졌던 사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영당과 서원이 함께 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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