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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서원

거창 무릉마을 영빈서원 · 낙영재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by Yeongsik_Im 2023. 6.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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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에서 24번 도로를 이용하여 합천을 향해 가는 길 남하면 무릉마을에 들려 영빈서원(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 305호)과 낙영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25호)를 돌아 보았다. 영빈서원 우측 언덕에 낙영재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거창 영빈서원 居昌 瀯濱書院

영빈서원은 영조 20년(1744)에 처음 세워 설학재 정구(雪壑齋 鄭矩)등 여섯 분의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이 지역 학문의 중심 역할을 담당한 영천사(瀯川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서원의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대문채인 광제문(光露門)은 솟을대문이다. 사당인

구인사(求人祠)는 정면 3칸,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1864년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가 일제 강점기에 국난 극복을 도모하고자 사림과 후손들이 1919년

다시 지었다. 그 뒤 민족 정신을 결집하는 공간이자 민족 자존과 지역 교화에 중심적인 역할을 한

유서 깊은 곳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대문채 광제문(光露門) 현판
영빈서원 강당
영빈서원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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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빈서원은 사용부재와 결구법이 훌륭하고 보존상태도 좋아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2001년 12월 20일 문화재자료 제305호로 지정되었다.

1951년에 세운 영빈서원육현묘정비(瀯濱書院六賢廟庭碑)
구인사 내삼문
구인사

정구(鄭矩, 1350∼1418), 정종(鄭種, 1417∼1476), 정표(鄭彪, 1515∼1578), 정응두(鄭應斗), 정시수(鄭時修, 1601∼1647), 정형진(鄭滎振, 1672∼1728) 등 동래정씨 6현을 제향하였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거창 낙영재 居昌 樂英齋

낙영재 입구

문화재자료 제625호인 낙영재는 조선 인조, 효종 때 남인의 대표 인물인 퇴계 이황(1501~1570), 미수 허목(1595~1682), 용주 조경(1586~1669)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봄에 유가의 성인에게 올리는 석채례(釋蔡禮)를 지내기 위해 지은 재실이다. 또한 지역의 선비들이 모임을 하는 장소인 유계소(儒契所)이기도 하다.

1925년 일제 강점기 때 거창읍에 있던 고을의 수령 등이 정무를 집행하던 건물인 동헌이 허물어지자 이곳으로 옮겨 낙영재를 세웠다. 정면 4칸, 측면 2칸이며 앞면의 반 칸은 툇간으로 활용되었다. 조선시대 동헌을 지은 방식과 재료를 엿볼 수 있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학술적으로 가치가 큰 문화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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