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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서울경기

한국의 보물 덕수궁 중화전 · 중화문

by Yeongsik_Im 2022.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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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사진을 정리하다보니 겨울에 덕수궁에도 다녀온 듯~~~아마도 덕수궁 왕궁수문장 교대의식을 보고 청계천으로 이동하며 잠시 돌아본 것 같다.

  

덕수궁(德壽宮)은 1897년에 선포된 황제국, 대한제국의 황궁으로 옛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이었다.그러나  1904년 덕수궁 대화재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 이후 덕수궁은 그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고 이때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었다. 

덕수궁 왕궁수문장교대식 대한문

덕수궁 왕궁수문장교대식은 조선시대에 행해졌던 궁성문 개폐의식, 궁성 수위의식, 순라의식 등을 기록 자료를 바탕으로 1996년부터 재현하고 있는 행사이다.

매일 2회 (11:00, 14:00)실시되며, 월요일 및 혹서기/혹한기/비상저감조치 발령시/ 눈과 비 오는 날은 행사는 실시하지 않는다. 관람객체험프로그램으로  전통의상 입어보기 체험, 수문장과 관람객의 포토타임이 있다.

 

 

서울 덕수궁 왕궁수문장 교대의식

수문장 교대의식은 덕수궁 성문 주위를 순찰한 수문군이 궁성문을 수위하던 수문군과 교대하는 의식으로 서울시가 1996년부터 진행해왔다. 시민들과 외국인 관람객에게 서울을 알리고, 전통문

hyanggyo.tistory.com

중화문 中和門
중화문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공포 양식은 중화전과 같이 조선 후기 수법을 가진 다포 양식을 따르고 있다.
중화전 中和殿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중화전 품계석

중화전은 1897년 러시아공사관에서 덕수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였으나, 협소하였으므로 1902년 새로운 정전으로 중화전을 지었다. 본래는 2층으로 된 중층 건물이었으나 1904년 4월 화재로 소실된 후 현재의 단층 건물로 중건되었다. 앞뜰에 조회 등의 의식이 있을 때 문무백관의 위치를 표시하는 품계석이 좌우에 있으며, 중화전의 정문으로 중화문이 있습니다. 특히 중화전은 중화문과 더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덕수궁 홈페이지

중화문과 중화전은 1985년 1월 8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중화전 내부 임금님이 앉는 자리를 더욱 위엄있게 꾸미기 위해 화려한 닫집을 달아 놓았다.
준명당과 즉조당은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준명당

준명당은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04년 화재 때에 소실되었으며, 같은 해에 건물을 다시 짓고, 1905년 8월 현판을 걸어 중건하였다. 목조 건물로 즉조당과는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고종께서 신하나 외국 사신을 접견하던 곳으로, 함녕전이 지어지기 전까지 고종의 침전으로 쓰였다고 한다. 이 건물은 높은 기단 위에 세워졌고, 정면 6칸, 측면 5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만들어졌고 또한 좌우 툇간에는 쪽마루가 있다. 이후 1916년 4월에는 덕혜옹주 교육을 위한 유치원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즉조당

즉조당은 15대 광해군과 16대 인조가 즉위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1897년 고종의 경운궁[덕수궁]으로 환궁한 직후 정전으로 이용하였으며, 이때 즉조전의 이름을 태극전, 중화전으로 불렀다. 이후 1902년 새로운 정전이 세워지자 다시 즉조당으로 불리게 되었다.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에 소실되었던 즉조당은 그 해에 석어당, 준명당과 함께 건물을 다시 짓고, 1905년 9월 현판을 걸어 완전히 중건하였다. 이 곳은 고종의 후비인 순헌황귀비가 1907년부터 1911년 7월 승하할 때까지 생활하던 공간이기도 하며,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덕수궁 홈페이지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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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어당

석어당의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다. 1904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같은 해에 건물을 다시 짓고, 1905년 9월 현판을 걸어 완전히 중건하였다. 덕수궁의 유일한 중층의 목조 건물로 선조가 임진왜란 중 의주로 피난갔다 환도한 후 거처하셨던 곳이자 1608년 2월 승하한 곳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밖에 광해군이 인목왕후를 유폐시켰던 곳, 인조반정이 성공한 뒤 광해군의 죄를 문책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석어당은 단청을 하지 않은 “백골집”으로 아래층은 정면 8칸, 측면 4칸이며 위층은 정면 6칸, 측면 1칸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덕수궁 홈페이지 참고

덕수궁돌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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