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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가람문학관 ·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by Yeongsik_Im 2023.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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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기 선생의 '별'은 내가 끝까지 외울 수 있는 몇 개 안되는 시 중의 하나이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마루의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별은 뉘 별이며 내 별도 어느 게요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현대시조의 아버지라 불리는 가람 이병기선생의 삶과 글을 찾아 익산시 여산면에 있는 가람문학관을 찾았다. 가람문학관은 한국 근현대 시조의 국문학을 대표하는 가람 이병기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가람 선생의 문학 작품과 자료를 전시·연구, 교육하는 문학관으로 2017년 10월 14일 개관했다.

가람문학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휴관), 1월 1일, 설날 및 추석날 휴관하며 관람료는 무료이다. 주차장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관람시간은 3월~10월은 09:00-18:00, 11월~2월은 09:00-17:00

단체관람(20명 이상) 예약 및 문의: 063-832-1891

가람문학관은 이병기 선생 생가, 이병기 선생 동상, 가람 이병기 선생 기념비, 이병기 선생 묘소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부터 소개한다.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안내문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
한국문인협회가 1995년 11월 30일 현대문학 표징사업의 일환으로 세운 표지석
승운정 과 탱자나무

승운정 옆의 탱자나무는 수령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이병기 선생의 고조부가 충남 연산에서 이곳에 내려와 정착하면서 심은 ㄱ서으로 보아 2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지상 1.6m 이상 높이에서 6개의 큰 가지로 나뉘어 무성하게 자라 그 모양이 아름답고 톡특하다.

승운정
수우재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의 수우재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6호이다.

안채,사랑채,고방채 등 세 채의 소박한 초가로 이루어져 있는데 'ㄱ'자 형태의 안채는 독특한 구조이다. 수유재 현판이 걸려있는 사랑채 옆에는 승운정이라는 아담한 정자가 놓여 있다. 그 옆에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112호로 지정된 수령이 오래된 '탱자나무' 가 꿋꿋하게 서 있다. 수우재 앞으로 가람의 조부가 조성한 우석과 우담이 있다.

안채는 'ㄱ'자 형태의 안채는 독특한 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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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문학관

 

가람문학관은 연면적 996㎡ 지상 1층 규모로 생가의 경관과 조화되도록 설계되었으며, 주요 시설로는 가람과 마주하기(영상실), 가람의 시조 음미하기(가람실), 가람의 생애 되짚기(상설전시실), 가람 기억 가져가기(체험실), 천호산 말길(세미나실), 문필봉 글줄(문인실), 용화산 능둠(휴게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람문학관은 2019년 4월 26일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가람문학관

가람문학관의 세부 공간별 특징을 소개하면 우선 ‘가람과 마주하기(영상실)’에서는 가람 이병기 선생의 삶을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약 5분 분량의 프롤로그 영상과 마주할 수 있다.

‘가람의 시조 음미하기(가람실)’는 가람의 시조를 영상과 낭송 및 도폭을 통하여 새롭게 접근해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으며, 가곡으로도 유명한 가람의 시조 <별>을 초저녁 밤하늘의 분위기 아래 들어볼 수 있게 하였다.

‘가람의 생애 되짚기(상설전시실)’에는 시대의 격변 속에서 우리 것을 소중히 지켜나간 가람의 삶을 시조 혁신(시조시인), 고전 발굴(서지학자), 국문학 정립(국문학자), 제자 양성(교육자)과 한글 수호(한글운동가), 가람일기(활동기록가) 등의 순으로 공간 배치하여 놓았다. 상설전시실 입구에는 가람의 고아한 품격을 연상시키는 난초 조형물이 있고 플래시영상이 흐르는 액정화면 너머로는 가람의 한글교실이 연출되어 있다.

‘가람 기억 가져가기(체험실)’는 가람 아카이브로, ‘가람학’을 슬로건으로 내건 시조체험 도서관이다. 체험실에서는 가람 선생의 저작들을 생생하게 읽어볼 수 있으며 다양한 시조 관련 서적들을 대하며 공부할 수 있다.

가람문학관은 가람정신을 국내 및 세계에 널리 알리고 이를 가람학으로 정립시키기 위하여 가람 선생의 다양한 저작을 시민은 물론 문인, 교육인, 연구자에게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전시를 기획하고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여 가람을 이해하고 체득할 수 있는 대화와 토론의 공간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가람 이병기 선생 기념비
가람 이병기 선생의 살아온 길

선생은 1891년 3월 5일 여산면 원수리 진사동에서 출생하여 한학을 수학한 후 신시조에 눈을 뜨게되어, 열아홉살에 전주공립보통학교를 거쳐 한성 사범학교를 졸업하게 되다. 그 후 전주제2보통학교·여산보통학교·동광·휘문고등보통학교 등에서 교직생활 중 시조를 연구하며 창작활동을 시작하다.

1921년 청년지를 통해 등단하여 본격적인 시조 시인으로 활동하다. 

서울대학교·전북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고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국문학 전사를 펴냈으며, 신시조 정립과 선구적 역활 등 선생의 업적은 국문학계의 태두로 공인받다. 1958년 고향집 수우재로 돌아와 애란·애주·애서의 삶을 살다가 1968년 11월 28일 사랑하던 고서와 난 그리고 애시를 남기고 가시다. 1998년 10월 9일     

ㅡㅇ에서 가람 이병기 선생 동상
가람 이병기선생 묘소
우국지사 이채 선생 행적비(좌측)와 이종희 공적비

가람 이병기 선생은 우국지사 이채 선생의 장남이다.

가람광장 곳곳에는 이병기 선생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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