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방방곡곡/경북경남

포항 호미곶 독수리바위 · 수산강습소 실습선 쾌응한 조난기념비

by Yeongsik_Im 2023. 3. 1.
728x90
반응형

호미곳에서 포항방면으로 갈 때는 자동차전용도로를 이용하면 빠르게 이동할 수 있지만 시간이 있다면 해안도로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호미곳 해안도로와 호미곶 바다계단길을 따라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시나브로 올라가다 보면 독수리바위, 악어바위, 호미숲 해맞이터 등 을 돌아 볼 수 있다.

호미곶 해안가를 따라 걷다 보면 바다에서 육지를 향하는 거대한 계단을 볼 수 있다. 이런 계단을 '해안단구'고 부르는데 바다와 땅의 움직임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지형이다. 특히 호미곶 일대는 뚜렷한 계단모양으로 보이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안단구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석조 계단에서는 입구를 지키는 돌사자 석상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러한 석상을 소맷돌 이라고 하는데, 자연이 만든 호미곶 바다계단 길에도 마치 소맷돌과 같이 계단 옆을 지키고 있는 독수리 바위가 있다.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구만길 226 (호미곶면) 부근 해안에는 독수리바위가 있는데 이 지역은 풍파가 심하면 고기(청어)가 밀려나오는 경우가 허다하여 까꾸리(갈고리의 방언)로 끌었다는 뜻에서 지어진 지명으로 '까꾸리개'라 부른다.

독수리바위에는 도로변에 전망대와 함께 쉼터 등이 조성되어 있는데 주차는 조금만 더 올라가면 조성되어 있는 도로변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독수리바위는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조각된 바위의 형상이 독수리의 부리를 닮았다하여 지역 주민들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다.

호미곶의 땅끝인 이곳에서 서쪽으로 지는 석양의 노을은 대흥산 너머에서 비추는 낙조로 층층의 산과 시가지, 특히, 어링이불의 포스코 굴뚝을 선명하게 나타내게 하는데 그 화면이 동양화를 연상케하는 절경으로 언론, 방송사 등 많은 사진작가들이 작품사진을 찍기위해 찾아 오는 곳이다.

이 독수리바위는 자갈이 굳어져 만들어진 역람과 모래자 굳어져 만들어진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바다계단을 이루는 암석의 특징과 똑같으며, 알고보면 지며이 바다계단과 소맷돌을 조각하는데 동일한 석재를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연은 이러한 암석들을 바다속에서 꺼내 파도와 날씨로 족가하는데 오랜 세월에 걸친 조각작업으로 독수리바위가 만들어졌는데, 이때 입자가 작은 모래로 구성된 부분이 자갈로 이루어진 부분보다 더 쉽게 깍이게 되어 독수리의 부리와 같은 형태를 가지게 되었다. 이처럼 바위를 구성하는 입자의 크기에 따라 깍이는 정도가 다른 현상을 '차별침식'이라고 한다.

728x90

 

수산강습소 실습선 快應丸 조난기념비

독수리바위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비석이 하나 세워져 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일본의 '수산강습소 실습선 快應丸(쾌응한) 조난기념비"였다.

1907년 이곳을 조선 침략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주변을 조사하던 일본 수산강습소 실습선 快應丸(가이요 마루)호가 높은 파도에 휘말려 좌초하면서 교관 1명과 학생 3명이 조난한 사고 이후 등표가 세워졌다고 한다.

해안가의 실습선 조난기념비는 1926년 9월 시 생존자인 소택가조(小澤嘉助) 등 제11회 졸업생들이 낡은 나무기념비를 석조기념비로 바꿔 세웠고, 해방 후 훼손되어 마을 숲속에 방치되었다가 1971년 1월 재일교포 한영출씨가 원래 위치보다 조금 더 바닷가쪽으로 다시 세운 것이라고 한다.

까꾸리개로 불리는 이곳은 포항 일대에서 가장 바람과 파도가 거친 곳으로 구만리에는 거친 파도로 악명 높은 교석초에 홀로 서 있는 녹색의 등표(燈標)가 있다.

일본 수산강습소 실습선 쾌응한 조난기념비

비문에는 다시 세운 이유를 "…육십만 한국 교포가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인도주의에 입각하여 그 옛날 망령들을 애도하는 한편 한·일 양국민의 우의를 돈독하게 하기 위하여…"라고 밝히고 있다.

쾌응환호의 좌초와 학생들의 희생은 결국 대보등대를 건립하는 계기가 됐다. 쾌흥환 좌초 이듬해인 1908년 12월 현재의 호미곶에 '장기곶 등대'가 건립돼 점등식을 갖는 한편 지금까지 이곳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2009년에는 이 비석에 대해 이전 논란이 있었다고 하는데 찬반양론이 있었다고 한다. 찬성 쪽은 관광객 접근이 쉬운 호미곶 광장으로 옮기든지 아니면 광장에 모조 기념비라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었고, 반대쪽은 일본인 관광객만을 생각해 역사적 기념비를 함부로 옮기는 것은 옳지않다는 것 이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