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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경북경남

[신라역사여행] 경주 육부전 · 양산재

by Yeongsik_Im 2023.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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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포석정을 들려 인근의 경주 가볼만한 곳을 찾아보니 양산재, 나정, 배동 삼릉 등이 있어 먼저 양산재(육부전)를 둘러 보기로 했다.

경주시 탑동 양산재 주차장에 도착하니 '육부전' 표지석이 먼저 눈에 들어 온다. 이곳은 1970년에 건립된 제전으로 신라 건국 이전 서라벌에 있었던 6부 촌장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양산재로 부르다 2019년 육부전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외삼문 대덕문
육부전 표지석과 안내문

양산 아래에 있는 육부전은 진한(辰韓) 육촌장(六村長)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삼국사기」의 「신라본기」에 따르면 신라가 건국하기 전에 진한 땅에는 고조선의 유민들이 산곡 사이에 나뉘어 살면서 육촌을 이루었다고 한다. 첫째는 알천양산촌(關川楊山村), 둘째는 돌산고허촌(突山高爐村), 셋째는 취산진지촌(薄山珍支村), 넷째는 무산대수촌(菜山大樹村), 다섯째는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 여섯째는 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이라 하였다. 기원전 57년에 여섯 촌장이 알천(閼川)언덕에 모여서 알에서 탄생한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신라의 초대 임금으로 추대하였다. 이 해가 바로 신라의 건국년(建國年)이다.

그 후 신라 제3대 유리왕(儒理王)이 여섯 촌장들의 신라 건국 공로를 영원히 기리기 위해 육촌을 육부(六部)로 고치고 각기 성을 내렸다. 앙산촌은 양부(梁部) 이씨(李氏), 고허촌은 사량부(沙梁部) 최씨(崔氏), 대수촌은 점량부(漸梁) 또는 모량부(牟梁部) 손씨(孫氏), 진지촌은 본피부(本彼部) 정씨(鄭氏), 가리촌은 한가부(漢祇部) 배씨(裴氏), 고야촌은 습비부(習比部) 설씨(薛氏)이다.이 여섯성씨가 신라의 초대 성씨이며, 각기 시조 성씨가 되었다. 이 사당은 1970년에 육촌장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이곳을 양산재(楊山齋)라고 부르다가 2019년에 강당을 새로 증축하고 육부전(穴部殿)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육부전 안내문

대덕문은 닫혀 있었으나 우측 관리사로 보이는 협문을 통해 육부전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우측 건물은 화장실이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조성되어 있고 관람료는 무료이다.

대덕문 앞에서 촬영한 강당인 윤적당과 동재와 서재

대덕문 우측 한쪽에는 2019년 육부전으로 명칭을 변경하기전 세워두었다가 옮겨 세워 놓은것으로 보이는 양산재 표지석이 있다.

건립된지 오래되어 보이지 않는 육부전 강당의 관련 자료를 검색해보니 2019년 9월 21일에 낙성식을 개최했다. 전학후묘의 배치에 따라 제향공간인 입덕묘(立德廟)로 들어가는 홍익문(弘益門) 전면에 강학공간인 강당을 건립해 신라건국을 이룬 6촌장의 유서 깊은 역사를 재조명하고 향토문화재로서의 면모를 새롭게 갖추고자 추진됐다고 한다.

윤적당 允迪堂
윤적당 내부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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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재
양산재 편액
양산재기
익익재
익익재 편액과 육부전낙성시헌성록

동재와 서재인 양산재와 익익재는 정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중앙 2칸은 대청마루를 두었고 좌우로 1칸씩 툇마루가 있는 온돌방을 두었다.

홍익문 내삼문
육부전 신라 6부 촌장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육부전 우측의 신축 건물은 제기고로 보인다.

경주 육부전 앞쪽에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테어난 전설을 간직한 우물인 나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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