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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직할시 승격 기념상 - 부산박물관 야외전시장

by Yeongsik_Im 2023.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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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7월 11일에 개관한 부산 박물관은 2002년 5월 3일 전시실을 새롭게 단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민들의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 증진과 연구를 위해 선사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부산의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으며, 부산지역의 선사ㆍ고대ㆍ중세문화를 규명하기 위한 학술조사와 발굴유물의 보존처리, 보관 및 박물관 교육 등을 통해 시민들의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 하고 있다.

부산박물관은 부산관, 동래관, 야외전시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먼저 https://hyanggyo.tistory.com/956동래관과 부산관은 먼저 소개했고 야외전시장을 소개한다. 야외전시장에는 유원각선생 매안감고비, 부산직할시 승격 기념상, 동래남문비, 척화비, 사처석교비 등 지정문화재를 비롯하여, 40여점의 석조물이 전시되어 있다.

부산박물관 전경

부산직할시 승격 기념상

부산시는 1963년 1월 1일 정부직할시로 승격하였다. 부산상공회의소에서는 직할시 승격을 기념하여 부산의 위상을 드높이고 시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한다는 취지로, 서면로터리에 부산탑 건립을 1962년 12월 25일 기공하여 1963년 12월 14일 준공하였다. 부산탑의 전체 높이가 23m에 동상높이 4.2m인 부산의 상징탑이 탄생하게 되었다. 부산탑의 초석에는 다음과 같은 건립문이 새겨져 있었다고 한다. '이 탑은 넓은 바다와 맑은 하늘의 복과 덕을 입어 자유와 평화에의 굳은 신념으로 새로이 출발한 직할시 부산의 영원한 번영과 자손만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온 시민의 정성으로 모아진 것이다'.

부산직할시 승격 기념상

서면로터리 한 가운데 우뚝 선 부산의 상징 부산탑은 위쪽에 부산이라는 머리글자를 상징하는 'ㅂ'자 모양을 형상화하였고, 그 'ㅂ'자 상부에는 '오륙도 형상'을 가로로 본떠 넣었고 부산탑 중앙에 위치한 자유의 횃불을 든 '남녀 청동상'은 부산의 영원한 번영과 부산사람의 발전을 기원하는 시민정신을 모두 담았다고 한다. 부산탑 중앙에 정의와 전진의 횃불을 높이 치켜든 청춘 남녀의 청동상은 조각가 박칠성 씨의 작품이다.

약 18년 동안 부산의 상징물로 많은 시민의 사랑을 받았던 부산탑은 1980년대에 부산지하철 1호선 건설공사로 인하여 철거하게 됨에 따라 동상부분은 시민들이 부산의 역사를 상기하며 발전하는 부산이 되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부산시립박물관으로 이전하여 재건하게 된 것이다.

부산박물관 야외정원 야외전시장
부산박물관 야외정원 야외전시장
부산박물관 야외정원 야외전시장
부산박물관 야외정원 야외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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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덕사지 삼층석탑
석조여래입상 고려 11~12세기
향로대
자헌대부 배신기처 열부 정부인 성씨 정려비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 복제품

 

유원각선생 매안감고비 및 비각

유원각선생 매안감고비

부산광역시 남구 대연동 부산광역시립박물관(釜山廣域市立博物館) 본관 좌측 부산직할시 승격 기념비 옆에는전체가 석조로 되어 있는 비각이 있는데 유원각선생 매안감고비가 세워져 있다. 2001년 10월 17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유원(染達)이란 '멀리 있는 것울 회유한다' 는 뜻으로 일본에 대한 조선의 교린(交隣) 외교 정책을 뜻한다、

'선생'은 일본과의 외교 업무에 종사한 조선 시대 동래부에 소속된 소통사(小通事, 조선 후기 하급 일본어 통역관)를 일컫는 말로, 후손들이 이들의 명단과 업적을 잊지 않고 기리기 위해 광무 10년(1906) 옛터에 집을 지어 '유원각'이라 청하고 비를 세운 것이다、

비운에는 비를 세운 목적과 비를 세운 사람들의 이름 등이 새겨져 있어 조선 후기 왜관(倭館, 조선 시대 일본과의 외교와 무역을 위해 일본인이 살 수 있도록 만든 공간)과 개항기 부산의 역사 및 한일관계사 등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 된다、또한 비를 보호하는 비각은 돌로 만든 집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비각의 모양과 짜 맞추는 방법도 전통적인 것과 매우 달라서 건축학적으로도 주목된다、

이 비는 원래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 754-17번지 산 중턱의 가정집 마당에 있었으나 2000년 9월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매안(埋案)은 선조의 신주나 물건을 묘소 앞에 묻는 것을 말하으로 박물관에서는

비를 울길 때 땅 속에 묻혀 있을지도 모를 선생안(先生案)등 관련 서류를 찾기 위해 조사했으나 아무

것도 찾지 못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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