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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천주교 순교터 서천교 · 곤지산 초록바위

by Yeongsik_Im 2023.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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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과 전주비빔밥으로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전주는 세계 가톨릭의 성지이기도 하다.

2014년 8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시복(諡福) 미사에서 복자(福者)로 추대되는 순교자 124명 가운데 천주교 전주교구와 관련된 인물들이 24명이었고, 103명의 천주교 성인 가운데 성 정문호 바르톨로메오(1801~1866), 성 손선지 베드로(1820~1866), 성 한재권 요셉(1829~1866), 성 이명서 베드로(1820~1866), 성 조화서 베드로(1814~1866), 성 정원지 베드로(1846~1866), 성 조윤호 요셉(1848~1866) 등 7명이 전주교구 출신이다.

천주교 전주교구는 한국의 첫 순교자가 탄생한 곳으로, 성지인 전주의 치명자산과 전동성당, 초남이성지 등 순교 선열의 숨결이 감도는 문화유적지마다 순례객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사적 제288호인 전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세워졌고, 르네상스 양식을 바탕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가미한 절충식 건물로 조형적으로도 아름다운 외관을 갖고 있는 전동성당 사제관은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178호이다.

특히 전주의 치명자산은 1801년 신유박해 때 호남 지역에 천주교를 최초로 전파하다가 순교한 유항검(아우구스티노)의 아들 중철(요한)과 며느리 이순이(루갈다) 등 유씨 일가족 7명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이번에는 소개하는 전주 천주교 순교터는 성 조윤호 요셉이 처형당한 서천교순교터와 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이 수장당한 순교터 곤지산 초록바위이다.

 

성 조윤호 순교지 서천교

천주교 순교터 서천교
성 조윤호 요셉

이 곳은 1866년(고종3년, 병인년) 12월 18일 천주교 신자 조윤호(요셉, 천주교 성인, 1848~1866)가 처형된 곳이다. 병인박해는 한국역사상 가장 큰 종교박해였다. 고종을 대신하여 쇄국정책으로 나라를 다스리던 홍선대원군은 천주교가 인간의 평등과 존엄성을 강조하여 전통사상과 질서를 파괴하고 프랑스세력과 내통한다하여 전국에서 만여명의 천주교 신자를 처형하였다. 이 때 1866년 12월 5일 완주군 소양면 화심리 성지동에 살던 조윤호는 아버지 조화서와 함께 체포되어 전주 감영에 갇혔다. 12월 13일 아버지는 숲정이에서 처형되었으나, 그 시대 법이 아버지와 자식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칼로 처형할 수 없었으므로 조윤호는 처형이 미뤄졌다. 전주 진영장은 조윤호에게 배교하기를 강요하였으나, 천지만물을 다스리는 하느님을 알고 공경하였는데 목숨을 구걸하고자 어찌 하느님을 배반할 수 있겠느냐며, "이 세상은 잠깐 동안이요, 죽은 뒤의 세상은 영원한데 잠깐 세상을 탐하여 배교하기보다 죽기를 바랄 뿐이다"하며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 12월 18일 진영장은 조윤호를 서천교 다리 밑에서 모여든 장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매질을 하여 죽이기로 하였다.군인들은 번갈아가며 태장 200대를 치고는 죽은 줄 알았는데 아직 숨이 남아있자 목애 밧줄을 감아 걸인들을 시켜 줄질을 하여 죽였다. 그 때 나이 18세였다. 조윤호 가문은 1839년 순교한 조부 조안드레아에 이어 3대가 순교하였다. 1984년 5월 6일 교황 요한바오로 2세는 조윤호를 성인품위에 올렸다.
천주교 순교터 서천교 표지석

전주천의 다리는 사진에 보이는 완산교에서 한옥마을 쪽으로 서천교 - 매곡교 - 싸전다리 - 남천교 - 한벽교로 이어진다. 몇년전에는 국립무형유산원에서 전주향교로 이어지는 인도교인 오목교가 완공됐다.

서천교와 매곡교, 그리고 싸전다리는 남부시장을 이어주는 다리로 많은 장꾼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서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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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산 초록바위

서천교 순교터에서 매곡교를 지나 싸전다리쪽으로 가다보면 남명희와 홍봉주의 아들이 수장당한 순교터인 초록바위가 있다. 곤지산 초록바위는 2017년 100년 후 전주시 보물이 될 '전주시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곳이다.

곤지산 초록바위

곤지산 끝자락이 전주천과 만나는 곳 초록바위는 싸전다리 남서쪽 남부시장 건너편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팝나무 군락에 숨어있다. 전주천 외쪽으로 도로가 나기전 초록바위는 전주천변에 솟은 높은 낭떠러지였다.

1936년 홍수로 제방공사를 하면서 상당부분 깍여서 현재는 완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없지만, 기록에 의하면 초록바위는 깍아지른 절벽으로 그 산세가 갈마음수격(渴馬飮水格)으로 말이 풀밭을 찾는다.'는 의미에서 초록바위라 명명했다고 한다.

5월마다 200살이 넘은 이팝나무 24그루의 하연 꽃구름에 덮이는 이 바위는 조선시대 죄인들의 형을 집행하던 형장으로 천주교인과 동학혁명군 지도자인 김개남장군과 동학교도들이 참형을 당한 아픔을 가지도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초록바위는 병인박해(1866)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남종삼의 큰아들 남명희와, 남종삼과 함께 순교한 홍봉주의 아들을 교수형으로 죽인 후 전주천으로 밀어넣어 수장시킨 곳이다. 남종삼이 처형되고 난 후 그의 부친 남상교와 큰아들 남명희는 공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를 한 감옥에 가두지 않는다는 국법에 따라 14세였던 남명희는 전주 감영으로 이송되었다.

전주 감영으로 이송된 남명희는 국법에 따라 성인(15세)이 되는 이듬해까지 처형을 연기하고 옥에 가두어 두었다. 그후 이듬해에 이곳 전주천 옆의 초록바위에서 교수형으로 죽인 다음 그 시신을 전주천에 수장 시켰다. 남명희 집 안은 3대가 순교의 영광을 입었다.

곤지산 표지석과 초록바위 안내문

전주시는 역사적 의미가 담겨있는 초록바위로 진입할 수 있도록 진입 데크를 설치하고 초록바위 정상에 전망 및 휴게공간을 설치하여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문화 숲길로 조성했다. 이팝나무와 영산홍 등 9종 총 1,600주의 수목 식재와 테마안내판 설치 등을 통해 다양한 볼거리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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