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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전주/전주한옥마을

전주한옥마을 전주대사습청

by Yeongsik_Im 2022.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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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옥마을 제1공영주차장 사거리 전주한옥마을 입구에는 전주한옥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는데 전주한옥마을을 찾는 관광객들은 아마도 모든 분들이 여기에서 인증샷을 촬영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전주한옥마을 표지석 바로 뒤에 보이는 건물들이 전주대사습청이다.

전주한옥마을 표지석과 전주대사습청

전주대사습청(全州大私習廳)은 전주대사습놀이의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문화시설로 대사습놀이(판소리,농악,기악,무용,가야금,시조,궁도,고법)관련 상설기획공연, 전수, 체험, 전시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원래는 전주소리문화관이었으나 전주대사습놀이의 역사와 전통을 보존·계승하기 위해 전주대사습청으로 변경되어 2021년 11월 25일 공식 개관했다.

전주대사습청 편액 산민 이용이 썼다.
전주소리문화관 소원연못

전주소리문화관을 방문하는 관광객과 시민이 소원연못에 던진 동전을 소리문화관에서는 지역의 복지단체에 꾸준하게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주대사습청은 기존 전주소리문화관 부지(1315㎡)에 건물면적 486㎡ 규모의 지상1층 건물로 건립돼 △대청마루 △소리마당(150명 이상 수용) △오정숙 전시관 △연습실(4개) △연못정자(관광객 쉼터) 등을 갖추고 있으며, 토요상설공연, 특별 기획공연, 전주대사습 체험 프로그램 등 대사습 문화를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도 운영 중에 있다. 또한 전주대사습놀이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하는 등 보존·관리에 집중하기 위한 아카이빙 TF팀을 가동하고 있으며, 전주대사습 전시관 구축사업을 펼치고 있다

국창 오정숙기념관이 있던 자리는 사무실로 이영되고 있었고 입구 우측 공간으로 이전하여 운영하고 있다.

기념관에는 선생의 유품 100여 점과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서, 대한민국 문화포장와 춘양문화대상 메달, 직접 무대에서 착용했던 장신구류와 무대의상, 발표회 당시 만들었던 홍보물 등 명창의 판소리 업적을 돌아볼 수 있는 유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오정숙과 스승 김연수가 소리공부 할 때 사용한 친필 창본과 스승이 직접 써준 편지 등 사제 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기록물도 살펴볼 수 있다.

국창 오정숙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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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가 낳은 당대 대표 명창. 동초제를 창시한 김연수 명창을 사사해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김연수제 춘향가 기예능보유자로 지정, 동초제 판소리의 명맥을 이은 국창 오정숙(1935~2008). 그는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흥보가, 수궁가 등 판소리 5바탕을 완창해 화제를 모았었다.

또한 오정숙 명창은 70년 만에 부활해 현재 판소리 최고의 등용문이라 불리는 제1회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부 장원을 차지하고 제1회 남도문화제 판소리 특장부 장원(대통령상), KBS국악대상 등을 수상했지만 무대와 명성을 뒤로 한 채 대둔산자락에 동초각을 짓고 동초제의 전승과 후학 양성에 전념했던 소리꾼이었다.

오정숙의 소리는 용골차고 야무지다.

그는 왜소한 체구를 가졌지만, 힘 있게 솟구치는 소리와 청중을 휘어잡는 뛰어난 발림, 구성지고 정확한 아니리 등 판소리의 세 가지 기운이 고스란히 배어있어 그는 단단한 바위와 세찬 폭포를 닮았다. 타고난 맑은 음색과 일곱 번의 백일공부로 단련된 공력은 그를 창악 패권자로 인정케 했으며, 소리 • 발림 • 도습
• 연기가 혼연일체를 이룬 완숙한 기량은 그의 이름올 엇되이 하지 않으려는 수많은 제자들로 이어졌다.

“판소리의 극적 요소를 강화시키는 오정숙의 너름새는 연극적 효과를 한껏 자아내면서 판소리에 낯선 오늘의 젊은 세대들조차 종국에는 적극적 인 청중으로 끌어돝이고 만다. 현대 인의 감성에 딱 맞아 떨어지는 소리 이 며 , 판소리 를 새롭게 구축한 이른바 현대 판소리 라고 할 수 있다.”

전주대사습청 바로 옆에는 전주국악방송이 위치하고 있다.

전주국악방송은 한국 전통문화의 대중화를 위해 2011년 10월 27일 개국하여 주파수 FM95.3MHZ로 전북과 충청도 일부지역으로 송출하는 국악전문 라디오방송국이다.

전주국악방송
국악의집 한옥체험관

국악의 집은 1926년부터 1974년까지 전주의 대표적 명문학교인 전주여고의 교장관사가 위치했던 유서 깊은 곳이다. 이후에 조선말 홍선대원군이 조선 최고의 소리꾼이라고 극찬한 서편제의 창시자 박유전(1835-1906), 근대 판소리 최고 명창 송계 정응민(1894-1961), 무형문화재 제5호 심청가 예능보유자인 정권진(1927-1986)으로 이어지는 국악 최고명문가 보성소리의 장손이자 가야금산조의 대표국악인 정회천교수(전 국립전토예술학교장)와 아내인 안희정교수(국악인, 서울대 국악과졸)가 국악의 집으로 명명하고 후진양성을 해오다가 한옥체험관으로 개조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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