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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방방곡곡/전북특별자치도

동학농민혁명 유적지 - 만석보혁파선정비 ·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조형물

by Yeongsik_Im 2024. 8.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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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보 쉼터에서 만석보유지에 들린 후 말목장터로 가는 길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예동마을에 있는 '만석보 혁파 선장비' 에 들렸다. 이곳에는 만석정과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만석보 혁파 선정비

만석보 혁파 선정비각

1892년 5월 고부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은 이미 보(洑 • 예동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을 강제로 동원,새로운 보를 축조하였다. 그리고 수세 (水稅)면제의 약속을 어기고 더욱 수탈하며 탐학을 저질렀다. 이에 ‘배들평야’ 농민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봉기하니, 바로 동학농민혁명의 발단이 되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보의 일부만 동학농민군에 의해 파괴되었고, 1898년(戊戌) 고부군수로 부임한 안길수(安吉壽)가 나머지를 철거하였다. 이는 만석보로 상징되는 조병갑의 수탈과 학정에 대한 재발 방지 약속과 마무리였다. 이 에 마을 주민들이 '군수 안후길수만석보혁파선정비 ( 郡守安候吉壽萬 石狀革罷 善政碑)’를 세웠다.


그 이후 비문(碑文)의 형태가 알아볼 수 없게 되었는데,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 을 맞이하여 뜻있는 지역민의 건의에 따라 비각(碑間을 세우게 되었다.

우측에 세워진 비석은 철종 13년(1862) 5월 건립된 '군수 김우현 휼민선정비(郡守金侯佑鉉恤民善政碑)’로, 비문은 서한풍(徐漢豊)이 짓고, 글씨는 유영원(柳英源)이 썼다.

만석정

만석정 상량에는 '동학농민 봉기의 최초 진원지 사기이천오년십일원오일오시 이주상량'이라고 쓰여 있다.
만석정 상량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조형물

비석 옆에는 2016년 2월 동학농민혁명 122주년을 기념하여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조형물이 건립되었다. 보름달과 이를 받치고 있는 세 개의 날개, 그 아래 드리워진 거대한 그림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보름달은 새로운 세상의 희망을, 날개는 농민들의 자주독립 의지가 세상에 펼쳐지는 형상을, 그림자는 농민군이 꿈꾸던 반봉건, 반외세 의지가 전국화, 세계화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또한 상징물의 주변 바닥에는 처음 거사를 모의했던 20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동학농민혁명 최초 봉기 상징조형물
상징물의 주변 바닥에는 처음 거사를 모의했던 20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동학 농민 전쟁 최초 봉기 상징 조형물 앞 오른쪽에는 동학 농민 혁명의 기치인 事人如天(사인여천), 輔國安民(보국안민),除暴救民(제폭구민)의 글귀가 새겨진 석판에 놓여 있다고 왼쪽에는 1894 석판이 놓여있다.

만석보 쉼터와 만석보터, 만석보혁파선정비를 보았으니 이제 말목장터로 간다. 이어서 동말목장터와 감나무, 정읍 전봉준 유적, 동학력명기념관 등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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