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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실학자를 만나는 곳 남양주 정약용 유적지

by Yeongsik_Im 2021.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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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고의 실학자를 만나는 곳 남양주 정약용 유적지

Jeong Yaj-yong Historic Site, Namyangju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양수리 두물머리마을과 광주시 남종면 귀여리 귀실마을을 잇던 나루였다던 두물머리에서 잠시 쉬었다가 정약용유적지로 향한다.

정약용유적지 정문 현판에는 실학연수(實學淵數)가 새겨져 있다.

다산 정약용 유적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종료 30분전 입장)관람할 수 있으며 입장료는 무료이고 매주 월요일은 휴관(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한다. 반려동물 출입과 음식물은 반입할 수 없으며 놀이기구와 운동기구 사용을 금하며 문화재보호구역으로 금연이다. 실학박물관과 다신기념관, 사당인 문도사와 다산선생묘가 있다.

다산 정약용이 만든 거중기 (擧重機)

거중기(擧重機)는 1792년(정조16) 다산 정약용이 서양의 기술과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하여 창의적으로 만든 기구로 높이는 4.4m, 너비는 1.7m 이다.

"기기도설”을 연구한 다산 정약용이 골차로 거중기룔 만들어 수원성올 쌓는 사업몰 지휘하면서 직접 만든 것으로, 이 기계룔 써서 건설 경비를 4만 냥이나 절약하였고, 거중기를 이용하여 노동자 두 사람이 약 10톤 또는 그 이상의 무거운 자재를 높은 곳으로 운반할 수 있었다.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여 위에 네 개의 도르래룔 연결하고 아래 도르래 밑으로 물건올 달아매고. 위 도르래의 양쪽으로 잡아 당길 수 있는 끈올 연결하여 이 끈울 물레에 갑아 동시에 물레를 둘림에 따라 연결된 끈올 룡해 물건이 위로 들어 올려 지도록 한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수원화성 촉조에 사용 하였으며 다산선생의 과학사상과 앞선 시대정신몰 엿 볼 수 있다. 전시모형으로 1:1로 제작 되었다.

배다리

1789년(정조 13년) 양주 배봉산(현 서울시립대 뒤)에 있던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으로 옮길 때 정약용 선생이 제출한 제안에 의해 노량진 부근에 배다리를 놓았다.

배다리는 강의 가운데에 가장 큰 배를 배치하고 양족으로 갈수록 조금식 작은 배를 배열하여 전체적으로는 아치형의 모양을 이루었다. 배 한 척은 가의 상류를 향하여 머리를 두고 한 척은 하류를 향하도록 하여 서로 교차시켜 가면서 늘어 세웠다. 이렇게 해야 닻을 내릴 때 닻끼리 서로 엉키지 않고, 배들이 정연해지기 때문이다. 배다리의 양끝 강안(江岸)에 각각 하나식의 홍살문을 세웠고, 배다리의 한복판에도 또 하나의 홍살문을 세워 세 개의 홍살문을 세웠다.

이후 배다리을 관이 운영하는 관청으로 주교사가 설치되었으며, 1882년(고종 19년)에 폐지되고, 그 업무를 금위영에 이관하였다.

배다리
배 한 척은 가의 상류를 향하여 머리를 두고 한 척은 하류를 향하도록 하여 서로 교차시켜 가면서 늘어 세웠다. 이렇게 해야 닻을 내릴 때 닻끼리 서로 엉키지 않고, 배들이 정연해지기 때문이다
배다리의 양끝 강안(江岸)에 각각 하나식의 홍살문을 세웠고, 배다리의 한복판에도 또 하나의 홍살문을 세워 세 개의 홍살문을 세웠다.
다산 정약용 선생 상(像)
다산 정약용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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