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방방곡곡/제주도

제주 추사관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

by Yeongsik_Im 2021. 9. 13.
728x90
반응형

제주추사관은 조선후기 대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지난 2010년 5월 건립되었다. 제주추사관의 전신은 1984년 지주지역 예술인들과 제주사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건립된 추사유물전시관이었으나 전시관이 낡은데다, 2007년 10월 추사유배지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면서 그 격에 걸맞게 재건립되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새롭게 제주추사관을 완공하였다.

제주 추사관은 소방설비 교체 및 전시실 개선을 위해 9월 13일부터 12월 20일까지 휴관중이며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는 정상 운영되고 있다. 자세한 문의는 제주추사관(064-710-6803)

추사 김정희 선생(秋史 金正喜, 1786~1856)은 타고난 천품과 치열한 학예연찬으로 서예사에서 뿐만 아니라 금석고증학, 경학, 불교,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19세기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석학이다.

추사 선생이 55세가 되던 해인 1840년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제주 유배길에 올라 약 9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추사 선생은 8년 3개월 제주에 머물면서 부단한 노력과 성찰로 ‘법고창신’하여 ‘추사체(秋史體)’라는 서예사에 빛나는 가장 큰 업적을 남겼으며,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국보 제180호)를 그려내었다.

 

제주추사관

 

제주추사관은 추사기념홀을 비롯해 3개의 전시실과 교육실, 수장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부국문화재단, 추사동호회 등에서 기증해 주신 ‘예산김정희종가유물일괄’, 추사 현판 글씨, 추사 편지 글씨, 추사 지인의 편지 글씨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제주 추사관 3전시실 사진 정면에 보이는 판전은 추사 김정희가 타계하기 3일전에 서울 봉은사에 써 준 행서체의 대작이다.

지하 1층 1전시실, 2전시실, 3전시실은 추사 작품 및 왕실문서, 추사 지인의 작품 등 전시되어 있고 지상 1층은 추사영실이다.

제주 추사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선운사 백파선사비를 살펴보고 있다

선운사 백파선사비는 추사 김정희가 정북 정읍 백양사의 설두. 백암스님으로부터 3년 전에 타계한 당대 대선사이며 스승인 백파선사 긍선(1767~1852)의 비문을 지어달라는 청을 받고 70세 때 쓴 글의 탁본이다.

728x90

추사 김정희 선생(1786~1856)은 타고난 천품과 치열한 학예연찬으로 서예사에서 뿐만 아니라 금석고증학, 경학, 불교, 회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19세기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석학이다
추사김선생적려유허비

제주 추사관 외부에는 추사 김선생 적려유허비 뒤로 추사 김정희가 위리안치돼 생활했던 강도순의 집이 있다.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 (西歸浦 金正喜 流配址)

Seogwipo kim, Jeong-hui Yubaeji(Seogwipo kim, Jeong-hui's Home in Exile)

 

김정희 선생이 55세가 되던 해에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먼 유배길에 올라 약 9년간의 유배생활을 했던 곳으로 지난 2007년 10월 사적 제487호로 지정되었다. 추사 선생은 이곳에 8년 3개월 머물면서 부단한 노력과 성찰로 '법고창신'하여 '추사체(秋史體)'라는 서예사에 빛나는 가장 큰 업적을 남겼으며, 그 유명한 '세한도(歲寒圖)'를 그려내었다.

이곳은 추사 김정희가 유배와서 두 번째로 머물던 강도순(姜道淳)의 집터다. 추사 본인은 귤중옥(橘中屋)이라 했고, 내방객들은 수성초당(壽星草堂)이라 불렀다고 한다.

제자 강위(姜瑋)는 “수성사” 라는 시에서 추사가 “달팽이집에서 10년간 가부좌를 트셨다”라고 했다. 그가 말한 달팽이집이 바호 이곳이다. 여기서 추사는 “추사체”를 완성했고,국보180호인 「세한도(歲寒圖)」를 그렸을 뿐 아니라 초의(草衣)스님을 비롯한 당대의 명사들은 물론 제주도 사람들과 맞번한 교류를 통해 일가의 전통을 이룩했다.

모거니는 김정희가 기거했던 곳이다. 집 울타리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위리안치의 형을 받은 김정희는 이곳에서 학문과 예술을 심화시켰다. 그의 추사체는 벼루 열개를 구멍내고 붓 천자루를 닳아 없어지게 했다고 할 정도로 고독한 정진속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방에(연지방아)

물방에(연지방아)는 소나 말을 이용해서 곡식의 이삭을 찧거나 빻는 일에 이용되었다. 보리와 조가 주식인 제주에서 꼭 필요한 물방에는 마을마다 하나씩 있었는데, 이 집에는 개인소유의 물방에가 있었다.

쉐막

소을 기르는 외양간을 쉐막이라 하는데 대문 옆에 두었다. 대문이 없는 제주 전통민가와는 달리 이 집처럼 부잣집에는 이와 같은 대문이 있었다.

돗통시

제주의 가정마다 하나씩 있던 돗통시는 돼지를 기르는 우리와 화장실을 헙쳐놓은 공간이다. 됴제를 돗통시에 키워 인분을 처리하고 그곳에서 나온 퇴비를 다시 밭에 뿌려 이용하는 방법은 제주민의 지혜로은 농법이다.

물팡과 물허벅

식수로 이용할 물을 길어올 때 사용했던 용기를 물허벅이라 하고 이것을 올려놓는 곳을 물팡이라 한다. 상수도가 보급되기 전에는 바닷가의 샘물이나 고인 빗물을 물허벅에 길어 와 식수로 사용했다.

탈곡하기 전의 농작물을 단으로 쌓아 두거나 탈곡하고 난 짚을 쌓아 놓는 것을 눌이라고 하며, 이를 만드는 행위를 '눌을 논다'고 한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