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의 향교와 서원/경상북도

경주 옥산서원 Oksanseowon Confucian Academy

by Yeongsik_Im 2020. 11. 15.
반응형

경주 옥산서원

Oksanseowon Confucian Academy in Gyeongju-si, South Korea.

2019년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등재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서원길 216-27

[7월 3일에 추가] 독락당을 가다가 옥산서원 하마비를 확인했다. 세워진 연도는 분명하지 않으나 서원이 창건되었을때에 같이 세워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하마비 옆으로 길이 나있는 걸로 보아 예전에는 이쪽으로 서원을 오갔을 것이다. 하마비는 비 앞을 지나갈때는 신분이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표석이다.

 

경주 옥산서원 유튜브

경주 옥산서원 역락문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

역락문을 들어서면 바로 무변루가 나오는데 뒷쪽이다. 무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2층 규모의 건축물로 구인당과 마주하여 자리잡고 있다.

건물의 아래층을 삼문으로 사용하고 위층에는 중앙 3칸에는 대청마루를 깔았고, 대청마루 양측은 온돌방이다. 그리고 온돌방 바깥쪽으로 부섭지붕을 내고 누마루를 설치하였다.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
경주 옥산서원 무변루  무변루 1층 좌우 양측에는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내삼문 체인문

구인재 뒷쪽에 있는 사당인 체인당은 내삼문이 잠겨 들어가지 못했다. 내삼문 서쪽에는 회재 이언적의 신도비가 있는 비각이 우측에는 경각이 자리잡고 있다.

경주 옥산서원 신도비각

1577년 세심대 용추위에 세워졌던 이언적 신도비는  훼손될 위험이 있어 1614년에 서원안에 신도비각을 지어 옮겼다. 

경각
경주 옥산서원 신도비각 뒤로 체인묘가 보인다.
경주 옥산서원 구인당

유생(儒生)들이 기거하는 동재는 부지런히 공부하라는 민구재(敏求齋)이고, 서재는 화평하게 공부하라는 암수재(闇修齋)이다.

옥산서원의 강당 이름은 구인당(求仁堂) 편액은 강당 안 북벽에 걸려 있고, 이 건물 정면에는 추사 김정희가 쓴 옥산서원 현판이 걸려 있다. 안쪽에 걸린 현판은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가 썼다고 한다.

경주 옥산서원 구인당
경주 옥산서원 구인당

 

세심대 洗心臺 Sesimdae Terrace

 

옥산서원 세심대 유튜브 영상

경주 옥산서원 세심대

세심대는 옥산서원 앞으로 흐르는 자계천 가운데에 자리한 너럭바위 일대를 말한다. 자계천을 흐르는 물은 세심대에서 떨어져 내려 작은 폭포와 용소龍권를 만들어 빼어난 경치를 이룬다.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1491~1553)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독락당을 지어 머물면서 주변의 산과 계곡에 이름을 붙였는데 이를 사산오대 라고 하며,그 중 하나가 바로 세심대이다,세심대는 마음을 씻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을 구하는 곳이라는 뜻이며,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퇴계 이황이 쓴 것이다.

1967년 3월 8일 사적 제154호로 지정되었다. 경북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에 있다. 창건된 해는 1572년(선조 5)이다. 당시 경주부윤이었던 이제민(李齊閔)은 안강 고을의 선비들과 더불어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독락당(獨樂堂) 아래에 사당을 세웠으며, 사액(賜額)을 요청하여 1574년(선조 7)에 '옥산'이라는 편액과 서책을 하사받았다.

양식은 전면에 강학처(講學處)를 두고 후면에 사당을 배치한 전형적인 서원 건축구조로 되어 있는데, 중심축을 따라서 문루·강당·사당이 질서 있게 배치되어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모습을 보여 준다. 서향의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을 들어서면 무변루(無邊樓)라는 누각이 나타나고, 이어서 계단을 오르면 마당이 펼쳐진다. 이는 누마루를 서원 건축에 도입한 최초의 사례이다. 정면에는 구인당(求仁堂)이란 당호의 강당이 있고, 좌우에는 원생들의 기숙사격인 민구재(敏求齋), 암수재(闇修齋)의 동·서재실이 있다. 강당을 옆으로 돌아서서 뒤로 가면 이언적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체인묘(體仁廟)라는 사당이 나타나는데, 사당의 주변에는 장판각(藏板閣)·전사청(典祀廳)·신도비(神道碑) 등이 있다.

이 서원은 현존하는 서원 문고 가운데 많은 책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현재 세 곳에 나누어 관리하고 있다. 하나는 서원 경내에 있는 어서각(御書閣) 소장본이고, 다른 하나는 이언적의 종가인 경주 양동 무첨당(無忝堂), 마지막으로는 독락당에 있는 소장본이다. 보관된 책으로는 국보 322-1호로 지정된 《삼국사기》가 대표적이며, 1513년에 간행되어 현재까지 발견된 활자본으로는 가장 오래된 책인 보물 524호 《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외에 《해동명적》 《이언적수필고본일괄》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한호(韓濩), 김정희(金正喜) 등 당대 명필(名筆)들이 쓴 편액을 보관하고 있기도 하다.

영남학파의 선구가 되는 이언적을 모신 만큼 옥산서원은 조선 후기까지 영남사림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훼철되지 않았다. 일제 말기에 화재로 옛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곧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0년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 중 양동마을의 일부로서, 2019년 ‘한국의 서원’ 9곳의 하나로서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에 등재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주 옥산서원 [慶州 玉山書院] (두산백과)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