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 안동 병산서원 屛山書院
사적 제260호1978년 3월 31일 지정
2019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2021년 5월 16일 춘천에서 포항으로 내려가는 중 비가 그치는 듯 하여 안동을 경유하기로 하고 병산서원으로 네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설정했다. 안동에 진입하여 병산서원 약3km를 앞두고 비포장도로가 이어진다. 차량이 교차할때는 비켜줘야 할 정도로 넓지않은 비포장도로를 덜커덩 거리며 한국의 서원을 찾아가는 길이 불편하지도 않고 더욱 운치가 있게 느껴진다. 이 길을 따라 유생들이 병산서원을 오갔을 것이리라.
서원 동쪽의 주차장에 도착하면 안내소와 화장실이 있고 입구에 임시로 설치된 코로나 방역부스에서 체크를 하고 하회구곡을 따라 조금 걸으면 우측에 병산서원이 있다.
하회구곡의 제1곡 병산은 병산서원 맞은편에 위치한 병풍처럼 펼쳐진 산이다 병산서원은 하회마을의 주산인 화산을 등지고 앞프로는 낙동강을 품고 있는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
낙동강 근원 있는 물이 동쪽에서 흘러내리고
병풍바위의 우뚝한 절벽이 그 안을 에웨쌌네
구름 낀 병산에 서원서니 강이 성처럼 둘러
일곡이라 이름난 터에 버드나무 나부끼누나
서애 류성룡이 선조 8년(1575)에 지금의 풍산읍에 있던 풍악 서당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 병산서원의 처음 모습이다. 류성룡은 선조 때 도체찰사와 영의정을 지냈던 정치가이며 유학자로, 1607년에 타계한 뒤 1614년에 그를 따르던 제자와 유생들이 이곳에 위판을 모시는 사당을 세웠다. 이로써 학문을 연구하는 강학공간과 제사를 지내는 제향공간을 모두 갖춘 정식 서원이 되었으며,철종14년(1863)에 ‘ 병산 ’ 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고종 때 동선 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헐리지 않고 그대로 살아남은 47개의 서원과 사당 중 하나이다.
서원의 정문인 복례문과 만대루를 지나면 강당과 동재,서재가 있다. 동재 뒤편으로 서 있는 것은 서원 관리인이 살았던 고직사이고,입교당의 서쪽 뒤편에 서 있는 것은 목판과 유물을 보관하는 장판각이다. 입교당의 동쪽 뒤편에 있는 계단을 오르면 사당으로 들어가는 내삼문과 사당인 존덕사가 있고,내삼문 동쪽에는 전사청이 있다.
병산서원은 서원이 번성하던 시기의 한 본보기로 여겨질 만큼 지은 솜씨가 빼어나고 보존이 잘 되어있으며,주변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도록 지은 점에서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 '로 이름나 있다.
병산서원은 '한국의 서운'은 "문화적 전통, 또는 현존하거나 소멸된 문영과 관계되면서 독보적이거나 적어도 특출한 증거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세계유산 등재기준을 인정받아 2019년 7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란 이름으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었다.
광영지는 선비들이 마음을 닦고 학문에 정진할 수 있도록 배려한 ‘서원 속의 정원’이다. 광영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이란 시 중에서 ‘하늘빛과 구름이 함께 노닌다(天光雲影共排個)라는 구절에서 인용하였다. 네모난 연못 가운데 둥근 섬이 있는데,이러한 한국 전통 연못의 모습을 천원지방이라고 한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뜻으로,동아시아 사회의 전통적인 우주관이자 세계관을 나타낸다.
학문을 배우는 공간인 강학영역은 강당인 입교당(立敎堂)과 많과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로 구성되어 있다. 입교당은 유생들이 배우고 원장과 교수가 거처하는 서원의 중심 공간이다. ‘입교’는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뜻이다. 강학당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이 있는데, 오른쪽 명성재(明誠齋)는 원장이 사용하였고 왼쪽 경의재(敬義齋)에는 교수와 선비들이 사용하였다. ‘명성’은 ‘밝음으로 성실을 가르친다.’는 뜻이고,‘경의’는 ‘항상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앞마당 좌우에 마주보고 선 두 건물이 동재와 서재이다. 동재에는 동직재라는 현판이, 서재에는 정허재와 장서실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동재의 큰 방에는 상급생들이 기거하였고,작은 방은 학생회장인 유사가 사용하는 독방이다. 서재의 큰 방에는 하급생이 기거하였으며,작은 방은 책을 보관하기 위해 온돌은 놓지 않고 마루를 깔았다.
병산서원에서는 열려 있는 복례문 앞에 서서 안쪽을 바라보거나,서원 안에서 만대루를 통해 바깥을 내다보면 어디 하나 막힘이 없이 탁 트여 있어 건물과 건물 밖의 자연이 하나인 듯 느껴 진다.
만대루에서는 하회구곡을 감싸고 흘러가는 낙동강과 병산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 온다. 만대루야 말로 한국서원 건축의 백미인 병산서원의 대표적인 건물이라 생각된다.
제향 영역은 향사를 지내고 이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강학영역과 제향영역을 구분하는 입구인 내삼문,사당인
존덕사,향사 음식과 제기를 준비하는 공간인 전사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존덕사에는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으로 국란을 슬기롭게 극복한 류성룡과 류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에 향사를 지낸다.
위패를 모신 사당은 신성한 공간이므로 서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입구인 내삼문에는 붉은 색칠을 하여 부정한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았다. 제향영역의 내삼문과 존덕사는 단청이 칠해져 있어 아무런 장식이 없는 강학영역의 건물과 대조를 이룬다. 주변에는 담장을 둘러 제향 영역을 보호하였다.
향사를 준비하는 전사청은 보통 사당과 한 울타리에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병산서원의 전사청은 별도의
담장을 둘러 각각 독립된 영역으로 분리되어 있다. 이는 향사에 올리는 음식을 철저히 지휘하고 감독하려는 목적이다.
병산서원의 달팽이 모양 뒷간은 유생들을 돕는 일꾼들이 사용하던 화장실이다. 문도 없고 지붕도 없이 돌담으로 둥글게 감아서 만들었는데 그 모양이 달팽이와 거의 같을 정도로 비슷하다.
담장의 한쪽 끝이 다른 쪽 끝에 가리기 때문에,문이 없어도 바깥에서 안이 보이지 않는 독특한 구조이다. 서원이 처음 세워진 17세기 초에 지어졌고,2003년 보수하였다. 1977년 사적 제260호로 지정된 병산서원의 부속 건물에 포함되어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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