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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석당공원 · 공개석실고분 · 고무신박종우시비

by Yeongsik_Im 2024.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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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김유신묘에서 내려 오는 길 왼쪽에는 통일신라시대의 돌방무덤인 공개 석실고분을 볼 수 있고, 조금더 내려오면 경주 문화재 발굴 보존의 선구자인 석당 최남주선생을 기리는 석당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석당공원

2006년 9월 24일 세워진 석당공원 표지석에는 "우리나라의 고고학계와 박물관학계의 여명기였던 1926년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경주박물관 창설에 참여하여 일제강점기에 우리나라 박물관 문화의 개착과 신라문화재 보존을 위해 평생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셨던 석당 최남주선생 탄생 101주년을 맞이허여 한국박물관인들의 이름으로 석당 선생님의 박물관과 신라문화 사랑의 아름다운 정신을 이 패에 새겨 드립니다."라고 새겨져 있다.

평생을 문화재 발굴과 보존을 위해 헌신한 최남주(1905~1980) 선생은 민간문화재 보호단체의 효시인 경주고적보존회 활동을 시작으로 현 국립경주박물관 창설에 참여하였고, 고고학자인 스웨덴의 구스타프 황태자와 서봉총 발굴에 동참했다.

그가 발견한 주요 유물은 경주 남산신성비, 경주 남산 철와곡 석불두, 흥덕왕릉 비편 등이 있다. 또한 사재를 들여 무열왕릉 비각을 건립하기도 했다. 선생은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스웨덴 왕실로부터 동양인 최초로 바자훈장 기사장을 수훈했다. 이후 칼 구스타프 현 국왕의 초청으로 스웨덴 왕실을 방문하여 국위를 선양하였다. 경주시민들은 문화유산 보전에 대한 그의 공로를 기념하여 2001년 추송비를 세웠다.

석당최남주선생추송비

석당최남주선생 안내문

고무신박종우시비

고무신박종우시비

한쪽에는 古無新 박종우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시비에는 ‘종(鐘)’의 일부가 새겨져있다.

 

아직은 아직은 건드리지 말라
도사린 설움
설움을 터뜨리지 말라.....種에서

 

고무신 박종우 시인은 1950년 시집 조국의 노래를 발표하고, 1957년 작품 ‘나’가 사상계에 신인상을 받아으며 등단했다.

울주가 고향인 박종우 시인은 1950년대 후반 경주에 오랫동안 거주하면서 경주공고 교사로 재직했었다. 시비는 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해인 1977년 5월 25일 고향만큼 사랑했던 경주에 세워졌다. 아호가 고무신인 그는 그의 아호에 걸맞게 항상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고 한다.

공개석실고분

공개 석실고분

경주시 충효동에 있는 이 무덤은 통일신라시대의 돌방무덤이다.

주검을 넣어 두는 방인 널방은 29㎡의 면적을 가진 정방형이며,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널길이 남쪽으로 마련되어 있다.

무덤안의 북벽쪽에 동·서로 길게 관을 놓았던 주검받침이 마련되어 있으며, 주검의 머리를 받쳤던 두침(頭枕)과 다리를 받쳤던 발받침(足座)이 놓여 있었다. 이 무덤은 도굴되었던 것을 1974년 수습 발굴함으로써 내부구조가 밝혀지게 되었으며, 발굴조사 당시 말뼈 32점만 출토되었을 뿐 무덤의 주인을 알 수 있는 유물은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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