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보물 만파식적을 얻은 곳 경주 이견대 利見臺
포항에서 31번 국도를 따라 울산으로 향하던 중 왼쪽으로 누각이 보이고 트럼펫 연주 소리가 들려 온다. 차를 세우고 내려가 보니 바로 이곳이 이견대(利見臺)였다. 쉽게 지나칠 수 있는 곳이니 목적지로 설정하고 것이 좋다. 들어가는 길도 좁고 불편하지만 주차장도 있다.
이견대에서 동해바다 문무대왕릉을 바라보며 멋지게 트럼펫을 연주하고 계시는 분이 있어 허락을 맞고 급히 폰으로 촬영했다.
이견대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경주 문무대왕릉,사적 제158호)이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신문왕이 감포 앞바다에 있는 문무왕의 해중 능묘(海中陵墓)를 망배(望拜)하기 위해 지었다고 한다.
문무왕이 왜구를 진압하고자 감은사를 세웠으나 끝내 완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바다의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아들 신문왕이 즉위하여 682년 감은사를 완성하고,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법당 밑에 구멍을 뚫어 두었다. 후에 용이 언덕 위에 나타났다고 하여 이곳을 이견대라 하였다.
이듬해 5월에 감은사 앞바다에 작은 산이 떠내려 와서 신문왕이 이 산에 들어가 용을 만나 옥대(玉帶)를 받았다. 또 산 위에 난 대나무를 베어내 피리를 만들었다. 이 피리가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해결해 준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다. 옥대와 만파식적은 그 후 신라의 보물이 되었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주역에 있는 글귀인 "비룡재천(飛龍在天) 이견대인(利見大人)”에서 따온 말로 신문왕이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서 나라에 큰 이익이 있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1970년 발굴조사로 이견대 건물 터를 확인하였고, 1979년 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추정하여 이견정을 새로 지었다.
이견대 안쪽에 걸려 있는 액자에는 1967년 신라 오악(五嶽) 조사단의 발굴 이야기 등 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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