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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바탕 전주/온고을 구석구석

전주 마랏마을 마전마을 이야기

by Yeongsik_Im 2024.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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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서부 신시가지는 행정구역상으로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마전(馬田), 척동(尺洞), 봉곡(鳳谷), 여매마을 일원에 해당된다. 이곳 효자동 일대는 서쪽으로 황방산과 천장봉 등의 산줄기가 이어지고 동쪽으로 삼천이 남북으로 흘러 만경강과 만나며, 나지막한 구릉과 물줄기 사이에는 드넓은 충적지대가 펼쳐져 예로부터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었다고 한다. 마전마을은 척동 북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서부제1근린공원을 지나 황강서원으로 가는 길 우측에는 '효과 예의 마랏(마전)마을'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2017년 7월 마랏향우회에서 세운 것이다.

마전이라는 마을이름 유래는 지형의 모습이 마치 "말이 밭에서 노니는 곳" 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현재의 서곡지구와 이어지는 우전로와 기전여중고, 마전초등학교, 마전교회(옛 마전마을) 등이 위치한 곳에 해당된다.

황강서원에 모시고 있는 이문정의 손자인 이백유는 공민왕 20년(1371)에 문과 7인에 올라 1380년 황산대첩에서 크게 이기고 본향을 찾은 이성계에게 오목대에서 화수회를 열어 환대하니 이성계는 이에 대풍가로 화답 하였으며 이백유는 이씨 조선 개국공신에 오른다.

이이후 백유가 44살 때인 태조 4년(1395) 개국공신이 되어 전라감사로 오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삼밭(麻田)이 마소 매는 밭으로 바뀌어 마전(馬田)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지금의 문학로(文學路)와 문학대공원은 이백유의 증조부인 이문영이 세운 정자 문학대에서 따온 것이다.

이백유 집안은 전주 효자동 마전(馬田, 마랏)에서 대대로 세거하며 700여 년 동안 대를 이어 효와 예를 다하여 조상과 어른을 봉양하여 이웃과는 의좋게 살아 왔으니 사람들이 말하기를 마랏 이씨 마랏 양반이라 불려왔다고 한다.

신시가지의 개발로 옛 모습은 사라졌으나 해마다 올리는 제례는 옛 그대로이니 마랏마을 그 행례 영원하리라.

孝와 禮의 마랏마을 표지석 뒤쪽으로는 동래정씨정려문(東來鄭氏旌閭門)과 효자전주이공춘선지려(孝子全州李公春善之閭)가 세워져 있다.

정려문은 국가에서 미풍양속을 권장하기 위하여 중신,효자, 열녀 등 모범이 되는 사람을 표창하고자 그 분이 사는 마을 입구나 집 문 앞에 세운 문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효자 열녀에 대한 정려문은 세종 13년에서 고종황제까지 계속 되었다.

동래정씨정려문(東來鄭氏旌閭門)

동래정씨정려문은 고려조 문하시중 단신공의 23세 손이며 조선조 개국공신 완성부원군 백유공의 13세손인 전주후인 이희극공의 부인이신 동래정씨는 지흠공의 따님으로 부모에게 효도하고 부군에게 부도를 다하고 병자 정축년 대흉년에는 기민들을 행랑으로 맞아 많은 ㅇ니명을 구제하였다. 이를 기리어 서기 1884년 고종황제께서 어명을 내리어 이문을 세우게 하였다.

효자전주이공춘선지려(孝子全州李公春善之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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