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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교와 서원/충청북도

진천향교 한국의 향교 164 충청북도 진천

by Yeongsik_Im 2024.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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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향교 鎭川鄕校 Jincheon Hyangyo Confucian School

진천향교 홍살문

진천향교(鎭川鄕校)는 순조 4년(1804)에 다락문의 형태로 지은 풍화루(風化樓)가 외삼문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풍속을 교화하는 곳'이라는 뜻이 담긴 풍화루는 창건 당시에는 없었으나 1804년(순조 4) 이 지방의 유지였던 최흡이 사재를 털어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풍화루는 정면 6칸, 측면 2칸 규모의 솟을삼문 형태의 2층 누각으로 동재와 서재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향교 건축에서 외삼문을 누문으로 만든 곳은 자주 볼 수 있지만 충청북도 지역에서는 드문 예에 속합니다.  먼저 소개해 드린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안성향교도 풍화루가 외삼문의 역활을 하고 있는 같은 형태인데 조선시대 중·후기에 건립된 향교에 풍화루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천향교 출입문인 풍화루에는 신도(神道)와 입문(入門)과 출문(出門)을 표시하여 두었습니다.

향교를 출입할때는 가운데 계단과 문은 신도(神道)와 신문( 神門)이라 하여 성현의 혼령이 출입하는문으로, 일반 사람들은 동쪽 계단으로 올라가서 서쪽 계단으로 내려와야 한다. 계단이 아닌 경우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향교를 소개할 때마다 강조를 하는데 향교에서는 신도를 건너거나 오르면 안된다. 특히 신도가 가운데에 있어서 그런지 신도에 서서 사진을 찍으시는 분들이 많은데 주의해야 합니다.

진천향교 풍화루

안성향교를 들렸다 청주로 내겨가는 길에 잠시 들렸는데 개방을 하지 않고 있어 외부에서 한바퀴 돌바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교성리에 있는.진천향교(鎭川鄕校)는 조선 태조(1392~1398)때 처음 지어졌다. 순조 4년(1804)에 명륜당을 보수하였으며, 동 16년(1816)에 대성전을 중수하였다. 그 후 고종 10년(1893)에 다시 중수하였고, 1980~1981년에 크게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981년 12월 2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진천향교 배치도

진천향교는 대성전과 동무·서무, 내삼문, 명륜당, 풍화루, 홍살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명륜당이 대성전 우측에 위치하고 있는 좌학우묘(左學右廟)의 구조라는 점입니다. 향교의 일반적인 배치는 경사지에 건립된 향교의 경우 전학후묘(前學後廟), 평지에 건립된 향교는 전묘후학(前 廟學後學)의 배칭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진천향교의 경우 경사지에 건립이 되며 풍화루와 내삼문 사이의 공간이 협소하여 부득이 하게 명륜당만 대성전 우측 넓은 부지에 세운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풍화루와 내삼문 사이의 공간이 협소하고 경사가 있습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으로 반 칸의 앞퇴를 두고 있습니다. 동무·서무는 각각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입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주향으로 하여 사성(四聖)[안자·증자·자사·맹자]을 배향하고 있으며, 동무에는 최치원(崔致遠)·정호(程顥)·정몽주(鄭夢周)·정여창(鄭汝昌)·이언적(李彦迪)·김인후(金麟厚)·성혼(成渾)·조헌(趙憲)·송시열(宋時烈)·박세채(朴世采), 서무에는 설총(薛聰)·주희(朱熹)·안유(安裕)·김굉필(金宏弼)·조광조(趙光祖)·이황(李滉)·이이(李珥)·김장생(金長生)·송준길(宋浚吉)·김집(金集) 등 25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진천향교 명륜당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진천향교는 1981년 12월 26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01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습니다.현재 소유 및 관리는 진천향교재단에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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